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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립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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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5월 8일 (토) 00: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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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립 정려
Commemorative Pavilion of Choe Seung-rip
대표명칭 최승립 정려
영문명칭 Commemorative Pavilion of Choe Seung-rip
주소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농소리 161-4
지정(등록) 종목 청양군 향토유적 제26호
지정(등록)일 2019년 5월 31일
수량/면적 1동



해설문

국문

최승립 정려는 최승립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기리기 위해 마을 입구에 세운 건물, 또는 그런 일을 뜻하는 말이다.

최승립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병든 부모의 곁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지성으로 모셨다. 아버지에게 종기가 생겼을 때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병을 고쳤고, 어머니에게 병이 생겼을 때는 뱀의 쓸개를 구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 한다.

조선 효종 때 명정*을 받고 현종 때 정려를 받았다. 1760년(영조 36) 예산 광시에 정문을 세운 것을 1812년 현재의 장소로 옮겼다.


  • 명정: 죽은 사람의 관직과 성씨 따위를 적은 기.

영문

Commemorative Pavilion of Choe Seung-rip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commemorative plaques or steles were bestowed by the government to honor a person’s patriotic loyalty, filial devotion, or matrimonial devotion and were meant to be hung on red gates or in pavilions in front of the honored family’s home.


영문 해설 내용

최승립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내려진 정려를 모신 건물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충신, 효자, 열녀에게 정려 현판 또는 정려비를 내렸으며, 정려를 받은 사람의 집 앞에 붉은 문을 세우거나 정려각을 세워 모셨다.

최승립은 어려서부터 지극한 효성으로 부모를 공경했다. 아버지에게 종기가 생겼을 때는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병을 고쳤고, 어머니에게 병이 생겼을 때는 엄동설한에 뱀의 쓸개를 구해 병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현종(재위 1659-1674) 때 정려를 받았다.

최승립의 가문인 탐진최씨는 예산군에 대대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정려각은 원래 1760년 예산에 세워졌다. 그러나 탐진최씨 후손들이 청양 지역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정려각도 1812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