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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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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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影池 |
주소 |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릉리 12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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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불국사 석가탑(釋迦塔, 국보 제21호)은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무영탑(無影塔)이라고도 한다. 영지는 무영탑 전설과 관련된 곳이다. 동경잡기(東京雜記)에는 불국사 뒷산의 나무와 단청이 비치지 않는 바가 없으므로 영제(影堤)라고 이름하였다고 하며, 조선 정조 때의 문인인 성대중(成大中)의 청성잡기(靑城雜記)에는 불국사 무영탑은 못에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다며 경주의 7가지 괴이한 이야기[東都七怪] 중 하나로 기록하였다.
영지와 무영탑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740년(영조 16)에 저술된 『불국사 고금창기(佛國寺古今創記)』이다. 당나라 석공과 그의 누이동생 아사녀의 이야기로 불국사 남서쪽 10리 지점의 못에 석가탑의 그리자가 비치지 않아 무영탑이라 했다는 간단한 기록이 있고, 초의선사의 ‘불국사 회고’라는 연작시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오사카긴타로(大板金太郞)와 오사카로쿠무라(大阪六村)의 『慶州の傳說(경주의 전설)』 중 ‘영지’에서 아사녀는 석공의 누이에서 아내로 바뀌었고, 탑 그림자가 영지에 비치지 않아 아사녀는 투신하고, 석공은 아내를 닮은 부처상을 조각한 후 투신한다는 비극적인 내용으로 변경되었다. 이를 토대로 현진건(玄鎭健)은 1941년 소설 『무영탑』에서 백제의 석공 아사달(阿斯怛)과 아내 아사녀(阿斯女)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를 완성하였다.
지금도 못 가에는 두 사람을 위해 지었다는 영사(影寺)의 돌부처가 남아 있으며, 영지 일대에는 두 사람의 사랑을 기리는 영지설화공원이 있다.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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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경잡기(17세기 중) :
- 청성잡기(1776-1800) : Seokkatap does not reflect in water.
- 불국사 고금창기(1740) : Seokgong of Tang and his younger si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