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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태사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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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4월 17일 (토) 10:10 판 (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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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태사묘
안동 태사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 태사묘
한자 安東 太師廟
주소 경북 안동시 태사길 13, ,24-1 (북문동)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5호
지정(등록)일 1974년 12월 10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4,035㎡
웹사이트 안동 태사묘,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삼태사(三太師)인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태사묘사실기년(太師廟事實紀年)』에 의하면 고려 성종(成宗) 2년(983)에 처음으로 삼태사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 성종(成宗) 12년(1481)에 터전을 마련했고, 중종(中宗) 35년(1540)에 현 위치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확대․재건하여 그 이름을 태사묘라고 하였다.

한국전쟁 중에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보수․완공하였는데 여기에는 보물각, 숭보당, 동서재, 경모루, 안묘, 차전각 등이 있다. 묘정에는 삼공신비가 있고 보물각 내에는 삼공신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태사묘는 정면 5칸, 측면 3칸, 자연석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은 ‘一’자형 집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곳은 고려 건국에 공을 세운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의 위패를 모시고, 이들을 위한 제사를 올리는 장소이다.

김선평(金宣平), 권행(權幸), 장정필(張貞弼)은 930년 고려 태조 왕건(877-943)과 후백제의 견훤이 고창(안동의 옛 지명)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을 때, 고려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도왔다. 이 전투에서 승리한 고려는 936년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며, 이 지역은 '동쪽을 평안하게 하다'는 뜻의 '안동'이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되었다.

태사묘는 고려 성종(成宗) 2년(983)에 안동부(安東府) 내에 세 공신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당인 ‘삼공신묘(三功臣廟)’에서 비롯되었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현재 위치로 옮겨 지어졌으며,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광해군(光海君) 5년(1613)에 규모를 확대해 재건하면서 ‘태사묘’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8년에 복원하였으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보수되었다.

경내 가장 높은 곳에 위패를 모신 건물이 있고, 그 아래에 제사 참석자들이 머무는 숭보당과 동‧서재, 회의와 제향 시 북을 치는 경모루 등이 ‘ㅁ’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그 외에 제기 보관을 위한 전사청과 차전놀이 용구를 비치한 차전각, 안중할머니와 안금이 위패를 봉안한 안묘당(安廟堂), 삼공신과 관련한 유물이 보존되어 있는 보물각, 관리인이 머무는 주사 건물이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음력 2월과 8일에 세 사람을 위한 향사를 모신다.

  • 보물각(寶物閣)과 경모루(景慕樓)는 1963년에 증축하였다.

1차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