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로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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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14일 (일) 14: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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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로 묘
Tomb of Kim Jae-ro
대표명칭 김재로 묘
영문명칭 Tomb of Kim Jae-ro
한자 金在魯 墓
주소 인천광역시 남동구 운연동 산 64-13
지정(등록) 종목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3호
지정(등록)일 1990.11.09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소유자 국토교통부
시대 조선
수량/면적 1기 / 434.3㎡



해설문

국문

김재로(1682~1759)는 숙종 36년(1710) 별시인 춘당대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친 후 대사간에 올랐다가 경종 2년(1722)에 신임사화(1721~1722)로 파직되었다. 영조 4년(1728) 이인좌(李麟佐, ?~1728)의 난이 일어나자 충주목사가 되어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그 후 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영조 16년(1740) 영의정에 올랐다. 묘역에는 무덤 뒤에 토담을 두르고 묘비, 상석, 망주석, 장명등, 양석 등을 갖추었다.

영문

This is the tomb of Kim Jae-ro (1682-1759), a civil official of the late Joseon period. H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710. During the 50 years of his official career, he was dismissed and reinstated a number of times due to the turbulent political situation in the 18th century. In 1740, he finally became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position in the central government, and held this post until his retirement in 1758.

There is a semicircular stone wall behind the tomb mound. In front of the mound are a tombstone, stone table, stone lantern, and two stone pillars.

영문 해설 내용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재로(1682-1759)의 묘이다. 김재로는 171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50여 년간 관직에 있으면서, 18세기 중반의 정치적 격동으로 인해 여러 차례 파직되었다가 복직되었다. 1740년 마침내 최고 관직인 영의정에 올랐으며, 1758년 은퇴할 때까지 영의정의 관직을 유지하였다.

묘의 봉분 뒤로 반원형의 석담이 둘러져있고, 봉분 앞에는 묘비, 상석, 망주석, 장명등 등을 갖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