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성혈사
영주 성혈사 Seonghyeolsa Temple, 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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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 성혈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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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eonghyeolsa Temple, Yeongju |
한자 | 榮州 聖穴寺 |
주소 | 경북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 459-99, 성혈사 (덕현리) |
시대 | 조선시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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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성혈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에 속한 60여 개의 사찰 중 하나이다. 부석사, 초암사와 비슷한 시기에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부석사와 초암사 사이인 국망봉(國望峯) 동남쪽 아래에 있다. 성혈사의 이름인 ‘성혈(聖穴)’은 사찰 남쪽에 있는 바위굴을 말하는데, 옛날에 이 바위굴에서 덕이 높은 승려인 성승(聖僧)이 나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그리고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창건하기 전에 소백산 국망봉 동남쪽 기슭에 초막(草幕)을 짓고 살았는데, 부석사를 세운 이후에 그 초막에 초암사를 건립하였다고 한다. 이후 매일 초암사 지붕의 서까래*가 없어지자 의상대사가 찾아보았는데, 서까래가 주변 숲속에 쌓여 있었다고 한다. 이에 풀을 뜯어 초막을 지었는데, 이 초막이 성혈사의 시초라고 전한다. 그리고 영주의 많은 선비가 성혈사에서 공부하거나 기도하여 벼슬길에 올랐다고 한다.
창건 이후 성혈사의 변천 과정에 대한 기록은 없지만, 나한전 상량문(上樑文)*에 따르면 조선 명종 8년(1553)에 나한전을 처음 지었고 조선 인조 12년(1634)에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이런 기록을 통해 조선 시대에도 사찰이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찰 내에는 여러 건물이 있는데, 나한전을 제외한 건물은 근래에 지어졌다. 보물 제832호인 영주 성혈사 나한전, 유형문화재 제402호인 영주 성혈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문화재자료 제523호인 영주 성혈사 신중탱화 등의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다.
- 서까래 : 마룻대에서 도리 또는 보에 걸쳐 지른 나무
- 상량문 : 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처마 도리와 중도리를 걸고 마지막으로 마룻대를 올리는 상량식을 축하하는 글
영문
Seonghyeolsa Temple, Yeongju
This Buddhist temple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by the monk Uisang (635-702). According to legend, after Monk Uisang founded the nearby Buseoksa Temple, he established Choamsa Temple on the site of the thatched hut he had built when he first visited Sobaeksan Mountain. However, the roof rafters of Choamsa Temple kept disappearing, so Uisang went out to find them. He discovered them in a pile in the forest between the two temples. He ripped up the grass around the pile and built a thatched hut there, which later became Seonghyeolsa Temple. The name Seonghyeolsa means "Temple of the Sage Cave" and comes from a story that a virtuous monk emerged from a rock cave to the south of the temple.
The temple was expanded in 1634 and 1746. All of the buildings date to the 20th century apart from Nahanjeon Hall (Treasure No. 832), which dates to 1553. The buildings of the temple complex are arranged naturally in accordance with the topography. They include Daeungjeon Hall, Sansingak Shrine, Simgeomdang Shrine, Handangjeong Hall, and others. The temple also enshrines a stone seated statue of Vairocana Buddha (Gyeongsangbuk-do Tangible Cultural Heritage No. 402) and a hanging banner painting depicting guardian deities (Gyeongsang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523).
- 영어 해성내용에서 건립 전설을 단순화시키는 과정에서 틀린 내용이 됐습니다. 원래 전설을 그래도 쓰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 나한전 해설문에 나한전이 1634년에 다시 지었다고 하는데, 그러면 여기에 언급한 1553년이 틀립니다. 정보 확인 필요.
영문 해설 내용
성혈사는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했다고 하며, 의상대사가 처음 소백산에 왔을 때 초막을 쳤던 자리에 이 절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1634년과 1746년에 중창되었으며, 나한전을 제외한 다른 건물들은 20세기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절의 이름은 사찰의 남쪽에 있는 바위굴에서 덕이 높은 승려가 나왔다는 이야기에서 유래하였다.
경내의 건물들은 지형에 따라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으며, 1553년에 세워져 성혈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나한전(보물 제832호)을 비롯해 석조비로자나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2호)과 신중탱화(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23호)를 모신 대웅전, 산신각, 심검당, 함당정 등이 있다.
참고 자료
- 성혈사 나한전 실측조사보고서, 문화재청, 2007
- 성혈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79240 -> 처음 소백산에 와서 초막을 쳤던 자리에도 사찰을 열었는데 이것이 바로 초암사이다. 창건설화에 따르면, 의상은 왕명으로 소백산 기슭에 초암(草庵)을 짓고 있었는데, 매일 지붕의 서까래가 없어졌다. 의아하게 여긴 의상이 찾아보니 서까래가 인근 숲 속에 쌓여 있었다. 이에 주위의 풀을 뜯어 초막을 지었다고 한다. / 절의 나한전은 1553년(명종 8)에 창건해 1634년(인조 12) 각용이 중창했고 1742년 7월부터 1746년까지 학순이 중수하였다. 1883년 아미타회상도가, 현대에 들어와 1954년에는 칠성도와 산신도가 조성되었다.
- 성혈사,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962 -> 1553년(명종 8) 현재 성혈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나한전이 건립되었다. 1634년(인조 12)에는 각용이 사찰을 중창하였다. 1742년(영조 18) 7월부터 1746년까지 학순이 사찰을 중수하였다. 1775년(영조 51)에 신중탱화, 1883년(고종 20)에는 「아미타회상도」가 봉안되었다. 1937년에는 대웅전을 중창하였다. 1954년에는 칠성도와 산신도가 조성되었으며, 195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고, 2004년에 요사를 신축하였다. 2007년에는 문화재청이 나한전에 대한 실측조사를 하였다. 2008년 주지 등현이 부임하면서 누각, 주지채[요사이나 특별히 주지가 거처하는 곳], 심검당, 일주문, 요사 등을 신축하였다. 2016년 현재의 주지 등월이 부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