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군자정
군자정 Gunjajeong Pavil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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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군자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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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Gunjajeong Pavilion |
한자 | 君子亭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
지정(등록)일 | 1992년 11월 26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군자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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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누정(樓亭)은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다락처럼 바닥을 땅에서 한층 높게 지은 건물이다.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 위주의 유람이나 휴식 공간으로 살림집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원래 누정에는 방이 없었는데, 누정의 기능이 다양화하면서 방을 만들게 되었다.
군자정은 이황 선생의 제자이면서 많은 학문적인 업적을 남긴 이덕홍(李德弘) 선생이 공부하였던 정자로 조선 선조 3년(1570)에 지어졌다. 군자정의 앞쪽에는 군자당이란 연못이 있으며, 군자정에서 왼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5호인 오계서원이 자리하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에 기와를 이었다. 건물의 왼쪽 2칸은 칸막이 없는 통간으로 된 마루방으로 되어 있고, 오른쪽 1칸은 온돌방으로 되어 있는데 앞면에는 쪽마루를 깔았고 난간*을 설치하였다. 마루방은 3면이 판자벽으로 되어 있으며, 앞면에 쌍여닫이 세살문**을 설치하고 옆면과 뒷면에는 쌍여닫이 널문을 설치하였다.
군자정은 오계서원과 더불어 조선 후기 영주 지역 영천이씨 가문의 구심처로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다.
- 난간(欄干) : 층계, 다리 따위의 가장자리에 일정한 높이로 막아 세워 놓은 구조물
- 세살문(細箭門) : 가는 살로 가로세로로 짜 만든 문
영문
Gunjajeong Pavilion
Gunjajeong Pavilion was first built in 1570 by Yi Deok-hong (1541-1596),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as a place of study.* About 20 m to the left of the current building is the Ogyeseowon Confucian Academy (Gyeongsangbuk-do Cultural Heritage Material No. 475) built in his honor. The Confucian academy and the pavilion originally stood in different places, but were both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and reconstructed in 1711.
Yi Deok-hong was a disciple of Yi Hwang (1501-1570), one of the most prominent Confucian scholars of the Joseon Dynasty. He himself became famous for his studies and practice of Confucianism.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Yi escorted the then crown prince, who later became King Gwanghaegun (r. 1608-1623), to refuge.
This pavilion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on the left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the right, and has a narrow wooden veranda with balustrades along the front. All of the outer walls of the wooden-floored hall were built with wooden boards/shingles and are equipped with doors.
In front of the pavilion is a pond called Gunjadang. Names of both the pavilion and the pond contain a term gunja which means “a virtuous one, accomplished in the teachings of Confucius”. It is said that Yi Deok-hong dug up a pond like this in front of his house, and in the pond, he planted lotus flowers which symbolize a gunja.
- in the 안내판 for 오계서원 it says that the 군자정 was an auxiliary building to another hall that 이덕홍 built for studying, but in this piece nothing is mentioned about that, as if the 군자정 itself was the building he built for studying, hm.
- wooden floored hall? room?
영문 해설 내용
군자정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이덕홍(1541-1596)이 공부하던 정자로 1570년에 지어졌다. 왼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이덕홍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오계서원(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75호)이 있다. 서원과 군자정은 원래 다른 곳에 있었는데, 1711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덕홍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1501-1570)의 제자였으며 학행으로 이름이 높았다. 임진왜란 때에는 세자였던 광해군(재위 1608-1623)을 호종하기도 했다.
건물은 왼쪽에는 마루방을, 오른쪽에는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쪽에 쪽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다. 마루방은 세 면을 모두 문이 달린 판자벽으로 세웠다.
군자정의 앞쪽에는 군자당이라는 연못이 있다. 정자와 연못의 이름은 모두 '유교에서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격자'를 지칭하는 말인 군자에서 따왔다. 이덕홍은 생전에 자신이 거처하던 집 앞에 연못을 파고 군자를 상징하는 연꽃을 심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이덕홍,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703
- 간재선생 연보, 간재집, 고전종합DG. http://db.itkc.or.kr/inLink?DCI=ITKC_BT_0220A_0090_000_0010_2019_002_XML
- 퇴계 이황의 고제 이덕홍을 기리는 영주 군자정, 선비문화의 산실, 누정,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pavilion/story/2275 -> 이덕홍은 예전에 거처하는 곳 앞에 연못을 파고 군자의 꽃인 연꽃을 심은 뒤 ‘군자당(君子塘)’이라 이름하고, 「군자당(君子塘)」이란 시를 지은 일이 있다. 이를 추모하여 이덕홍을 추모하는 서원에서 연못을 파고 군자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 군자정의 현판은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인 양호(楊鎬)가 쓴 것이라고 한다.
- 군자정,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50 ->이 정자는 오계서원에서 우측으로 약 20m가량 떨어진 얕은 구릉지에 남향하고 있다. 정자 앞쪽에는 군자당이란 연못이 남아 있다. 건립연대는 오계서원이 1636년 대홍수로 유실되자 숙종 37년(1711)에 현 위치로 이건할 때 함께 건립되었다.
- [2018 영주선비신문] 영주의 선비, 영주시민신문, 2018.5.9. https://www.yj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7095 -> 이덕홍(李德弘 1541-1596) : 중종~선조. 본관 영천. 자는 굉중(宏仲), 호는 간재(艮齋)이다. 영주 남촌 구룡동(현재의 장수면 호문리)에서 태어났다. 퇴계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역학과 산학에도 정통하여 선기옥형(璇璣玉衡)과 혼천의를 제작했다. 1578년(선조 11) 조정에서 학행이 높은 선비 아홉 사람을 천거할 때 4위로 뽑혔으며, 임진왜란 때는 세자를 따라 성천까지 호종했다. 이때 상소문에 귀선도를 첨가하여 바다에서는 거북선, 육지에서는 거북거를 사용할 것을 진언하였다. 특히 그가 임진왜란을 만나 거북선의 원형설계도로 추측되고 있는 ‘귀갑선도’를 제작한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주역질의』·『사서질의』·『계산기선록』·『주자서절요강록』·『간재집』 등이 있다. 영주 오계서원에 배향되었다.
- 퇴계 제자 이덕홍, 임진왜란 때 귀갑선 건조 제안, 경북일보, 2018.7.12. "https://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1736 -> 귀갑선(龜甲船)은 임진왜란 때 이덕홍이 왜적을 막아야 한다는 일념 아래 창의적으로 고안한 특수 군선이다. 이덕홍은 임진왜란을 직접 겪고 당시 국왕인 선조와 왕세자인 광해군에게 왜군을 물리치기 위한 정치·군사 대책을 제시하는 글을 올렸다. 선조 26년(1593년) 1월 의주 행재소에서 선조에게 올린 소에서 바다에서 적을 막을 수 있는 귀갑선 건조를 제안하고 말미에 귀갑선도를 첨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