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일우정
영주 일우정 Irujeong Pavilion, 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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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 일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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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Irujeong Pavilion, Yeongju |
한자 | 榮州 逸愚亭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로938번길 25 (이산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40호 |
지정(등록)일 | 2008년 9월 1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922㎡ |
웹사이트 | 영주 일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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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누정(樓亭)은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룻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 형식의 집을 말하며, 전통시대에 자연 경관과 어우러져 휴식과 학문 등을 행하던 공간이다. 누각과 정자를 함께 일컫는 명칭으로 정루(亭樓)라고도 한다. 일반적으로 이름 뒤에 누(樓) · 정(亭) · 재(齋) · 암(庵) · 대(臺) 등의 명칭이 붙는다.
일우정은 전규병(全奎炳)이 고종 5년(1868)에 지은 정자이다. 전규병이 연못을 파고 그 옆에 있는 바위에 “일우대(逸愚臺)”를 새기고 정자를 지었으며, 정자의 이름은 류주목(柳疇睦)에게 청하여 지었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1.5칸의 규모로 완만한 경사지를 이용하여 전면에는 낮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둘러 격식을 갖추었다. 평면 구성은 가운데 2칸 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반 칸 마루를 설치하였고, 왼쪽 반 칸은 양분하여 앞 공간에는 위패*를 모실 수 있는 작은 사당을 마련한 점이 특징이다.
정자와 연못, 금석문과 편액, 『일우정창수록』 등 현존하는 유적과 기록을 통하여 조선 시대 말기 선비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 누마루 : 다락처럼 높게 만든 마루
- 위패 : 죽은 사람의 이름을 적은 나무 패
영문
Irujeong Pavilion, Yeongju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조선시대의 학자 전규병(1840-1905, 호: 우엄)이 자연 경관을 즐기고 학문을 닦기 위해 1868년에 건립하였다. 정자가 있는 지동리 마을은 1450년 경 조선시대의 무신 전주(1501-1559)가 이주한 이래로 옥천전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정자 뒤편에는 전규병 가문의 후손이 살고 있는 우엄고택이 있다.
전규병은 1866년에 집 앞 마당을 파서 연못을 만들었고, 2년 후 이 정자를 세웠다. 정자의 이름은 전규병의 스승인 류주목(1813-1872)이 지어준 것이며, ‘일우’는 세상을 등지고 편하게 산다는 뜻이다.
정자는 완만한 경사지에 지어졌으며, 전면에는 낮은 누마루를 설치하고 난간을 둘렀다. 온돌방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마루를 두었으며, 왼쪽 앞 공간에는 위패를 모실 수 있는 공간을 별도로 마련했다.
참고자료
- 무수촌과 함께 늙어가는 우엄고택과 일우정, 영혼이 아름다운 날에 윤영초시인, 다음 블로그 https://blog.daum.net/flyyc/14679772 -> 소개하는 동선을 통해 우엄 고택 동편에 일우정이 있는 것으로 추정 가능 / 뒤에 있는 건물은 정선전씨의 이 마을 입향조인 전응삼의 호를 딴 칠리정과 전신헌이 지은 송월당으로 보임. 송월당은 조선 후기에 지어졌으며, 채제공이 쓴 편액만 전해오다가 후손들이 원래 자리에 중건한 것이라고 함.
- 영주 일우정, 디지털영주문화대전 http://yeongju.grandculture.net/yeongju/toc/GC07400454
- 바람이 좋은 마을 지동2리 ‘이르실’, 영주시민신문, 2014.11.14. http://www.yjinews.com/news/articlePrint.html?idxno=32457 -> 일우정의 주인 전규병(全奎炳, 1840-1905)은 1866년에 연못을 파고 그 옆에 있는 바위에 ‘일우대(逸愚臺)’라고 새겼다. 그 후 1868년 정자를 짓고 스승인 계당 유주목에게 청하여 정자 이름을 ‘일우정’이라고 지었다. 일우(逸愚)는 세상을 등지고 편하게 산다는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우정 안 쪽에 있는 고택이 우엄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