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성성재종택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3월 16일 (화) 12:55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안동성성재종택.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443701590000 안동 성성재종택...)
안동 성성재 종택 |
|
대표명칭 | 안동 성성재 종택 |
---|---|
한자 | 安東 惺惺齋 宗宅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부포로 668 (예안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59호 |
지정(등록)일 | 2013년 4월 8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수량/면적 | 일곽 |
웹사이트 | 안동 성성재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중기 학자인 성성재(惺惺齋) 금난수(琴蘭秀 , 1530~1604)의 집이다. 그는 본관이 봉화이며,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제자이다. 명종(明宗) 16년(1561) 생원시에 합격한 뒤 봉화현감 등을 지냈으며, 정유재란(丁酉再亂) 때에는 예안(禮安) 수성장(守城將)으로 활약하였다. 사후 승정원(承政院) 좌승지(左承旨)에 증직되었다. 위패는 이 건물의 뒤편에 조성된 동계서원(東溪書院)에 봉안되어 있다.
이 건물은 정침(正寢), 아랫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정침의 우측에 있으며, 아랫채는 정침의 좌측에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 반 규모의 ‘口’자형 맞배지붕이다. 18세기에 지어진 안동지방의 상류주택으로 시대성과 지역성이 잘 드러나는 건물이다. 또한 금난수는 35세 때인 1564년에 이 건물의 아래 동계(洞溪)가에 성재(惺齋)라는 정자를 짓고 학문에 힘썼는데,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손수 ‘성재(惺齋)’라는 현판과 팔영시(八詠詩)를 써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