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아막성
남원 아막성 Amakseong Fortress, Namw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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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남원 아막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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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Amakseong Fortress, Namwon |
한자 | 南原 阿莫城 |
주소 | 전라북도 남원시 아영면 성리 83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기념물 제38호 |
지정(등록)일 | 1977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수량/면적 | 일원 |
웹사이트 | 남원 아막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아막성은 봉화산(해발 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위치한다. 산줄기 정상부와 주변의 계곡을 감싼 ‘포곡식산성’으로, 산성의 정상부에서는 아영분지가 한 눈에 조망되며, 가야[기문국] 수장층 무덤인 남원 유곡리와 두락리·월산리·청계리 고분군 등이 인접하여 자리한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약640m 내외, 동-서 폭180m, 남-북 폭165m 내외로 평면형태는 방형에 가깝다. 성벽은 다듬은 석재를 사용하여 수평 줄쌓기 방식으로 축조하였으며, 구간마다 사용된 성돌의 형태가 달라 조성 주체 및 시기의 차이가 보인다. 성곽시설로는 문지 3개소와 2개소의 치 등이 있으며, 부속시설로는 집수시설과 계단식 건물대지가 남아있다.
『삼국사기』 백제 무왕 3년(602년), 무왕 17년(616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했다는 기록이 전하는데, 발굴조사를 통해 문헌사적으로 추정되었던 아막성의 실체가 확인되었다. 조사결과, 길이 9.5m, 폭 7.1m, 깊이 2.5m의 대형 집수지의 존재가 파악되었다. 집수지 외측에는 내부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기 위한 도수로가 확인되었으며, 도수로 외측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 놓은 나무기둥이 조사되었다.
집수시설 내부에서는 삼국~나말여초기에 이루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 중 토기류의 경우, 대다수가 6세기 중반~7세기 전반경에 제작된 신라토기로 아막성의 축조·운영시기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었는데, 기록상 등장하는 아막성의 운영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신라유물 이외에 가야토기와 백제토기도 출토되었는데, 가야토기는 신라의 축성 이전에 운봉고원에 지역적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가야 세력과의 연관성을 보여준다. 백제토기는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각축을 벌였던 아막성의 역사성을 복원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출토된 유물 중 칠 원료가 담겨져 있는 그릇은 남원칠기 문화의 전통과 역사성을 복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이 외에도 목제유물과 동물유체가 다량 출토되었다. 곰 유체의 경우 신라 월성에서 출토된 예가 있는데, 『삼국사기』기록에 신라인들이 곰의 가죽으로 장군 깃발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등장하고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 있다.
영문
Amakseong Fortress, Namwon
This fortress is located on the ridge of Bonghwasan Mountain (919.6 m above sea level) stretching to the south. It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by the Silla kingdom (668-935) in the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According to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the Baekje kingdom (18 BCE–660 CE) attacked this fortress in the years 602 and 616, as the surrounding area became the epicenter of fierce battles between the two states.
From the top of the fortress one can see the the Ancient Tombs of Ayeong Basin, as well as other nearby ancient tomb sites in Yugok-ri and Doguk-ri Villages (Historic Site No. 542), in Wolsan-ri Village (Jeollabuk-do Monument No. 138), and in Cheonggye-ri Village (Jeollabuk-do Monument No. 145). These tombs belong to the ruling class of Gimunguk(?), one of the chiefdoms of the Gaya confederacy (42-562).
The fortress measures about 640 m in perimeter, 180 m from east to west, and 165 m from north to south. Hewn stones of various shapes were used in different sections of the wall, which suggests that they were built in different periods by different people. A number of structural remains were found in the vicinity of the fortress wall, including three gate sites, two bastion sites, a water basin site, and a terraced building site.
The water basin was discovered in 2020. It measures 9.5 m in length 7.1 m in width, and 2.5 m in depth. Ditch(es), measuring 0.5 m in width, were discovered outside of the basin and were used to slow down the water current as it flowed toward the basin. Wooden pillars were placed into the soil at specific intervals near the ditch(es). It is presumed that they were installed to prevent structural damage to the basin.
Important artifacts were also excavated inside the basin. Most of them are earthenware dating to the mid-6th and early 7th centuries, as well as the earthenware made by Gaya and Baekje. The Gaya artifacts provide evidence of the Gaya’s presence in the area prior to its annexation to Silla and construction of this fortress. The Baekje artifacts, on the other hand, demonstrate its rivalry with Silla over the claim to the fortress. Earthenware with traces of lacquer was also discovered here, which presents a glimpse at the origins of the famous lacquerware of Namwon. The remains of bears, horses, and cows were also found in the basin. The presence of bear remains could be explained by a record in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Samguk sagi) stating that the people of Silla made their (war) flags out of bear skins. In addition, several wooden artifacts such as wood slips and a wooden sword were unearthed on the site.
- 기문국 표기??
영문 해설 내용
봉화산(해발 919.6m)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위치한 이 석성은 삼국시대에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602년과 616년에 백제가 신라의 아막성을 공격했다고 하며, 이 성의 주변 지역은 신라와 백제 사이에 격렬한 쟁탈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산성의 정상부에서는 아영분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인근에는 유곡리와 도국리 고분군(사적 제542호), 월산리 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제138호), 청계리 고분군(전라북도 기념물 제145호) 등 가야연맹의 한 나라인 기문국 지배자들의 무덤들이 있다.
산성의 규모는 둘레 약 640m, 동-서 폭 약 180m, 남-북 폭 약 165m이다. 성벽은 다듬은 석재를 쌓아 만들었고, 구간마다 사용된 돌의 형태가 달라 조성 주체와 시기가 다른 것으로 추정된다. 성벽 주변에서는 문지 3개소, 치 2개소, 집수지, 계단식 건물대지 등이 발견되었다.
2020년 발굴조사를 통해 발견된 집수지는 길이 9.5m, 폭 7.1m, 깊이 2.5m의 대형 규모이다. 집수지 바깥 쪽에서는 집수지로 유입되는 물의 흐름을 원활하게 조절하기 위한 폭 0.5m 내외의 도수로가 확인되었다. 도수로 주변에서는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 놓은 나무기둥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집수시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집수지 내부에서는 남원 지역의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는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대부분의 유물은 6세기 중반에서 7세기 전반에 제작된 신라 토기이고, 가야와 백제의 토기들도 함께 발견되었다. 가야토기는 신라의 축성 이전에 이 일대에 기반을 두고 발전했던 가야 세력과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백제토기는 아막성에서 백제와 신라가 치열한 각축을 벌였음을 보여준다. 토기 중에는 칠 원료가 담겨져 있는 그릇이 발견되었으며, 이는 한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남원 칠기의 전통과 역사성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곰, 말, 소, 자라 등의 동물 유체도 발견되었는데, 신라인들이 곰의 가죽으로 장군 깃발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삼국사기』에 남아 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유추해볼 수 있다. 이밖에도 글씨가 새겨진 목간과 목검 등의 목제 유물도 발견되었다.
참고자료
- "남원 아막성(阿莫城), 신라시대 대형 집수시설 발견", 전북일보, 2020.11.17. http://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20961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