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북산정
합천 북산정 Buksanjeong Ritual House,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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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북산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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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uksanjeong Ritual House, Hapcheon |
한자 | 陜川 北山亭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외토1길 38 (삼가면, 제실)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4호 |
지정(등록)일 | 2005년 7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합천 북산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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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북산정은 학자 류덕용(柳德龍, 1563~1644)을 모신 문화 류씨(文化 柳氏) 문중의 재실로, 1873년(고종 10)에 건립하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어 남명 조식(南冥 曺植)과 한강 정구(寒岡 鄭逑)에게서 공부하였고, 만년에 북산정을 지어 학문을 연구하고 토론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각처에서 선비들이 모여 들었다고 전한다.
현재의 북산정은 앞면 4칸, 옆면 1칸 반으로 방, 2칸 마루, 방의 순서로 배열된 건물로, 뒤편에 제(祭)를 올리는 북암사(北巖祠)가 위치한다.
영문
Buksanjeong Ritual House, Hapcheon
This ritual house for the commemoration of Ryu Deok-ryong (1563-1644),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nd the preparation of his ceremonial rituals was built in 1873 by the Munhwa Ryu clan family.
Ryu Deok-ryong, who was taught by the renowned scholars of the Joseon period Jo Sik and Jeong Gu (1543-1620), did not pursue official positions and devoted his whole life to concentrating on his studies.
It has a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with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ach side, a narrow wooden veranda along the front, and a small closet added at the back side. In the back of Buksanjeong Ritual House there is a shrine enshrining Ryu Deok-ryong.
영문 해설 내용
북산정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류덕룡(1563-1644)을 기리고 그의 제사를 준비하기 위해 1873년 문화류씨 문중에서 세운 재실이다.
류덕룡은 저명한 유학자인 조식과 정구(1543-1620)의 문하에서 공부하였으며, 평생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학문에 매진하였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앞면에는 툇마루를 달고 뒷면에는 벽장을 설치했다. 북산정 뒤쪽에는 류덕룡을 모신 사당이 있다.
참고자료
- "유덕룡", 연원가 탐구, 남명학연구원. http://www.nammyung.org/bbs/board.php?bo_table=man&wr_id=128&page=2
- 합천 여행/삼가면 외토리 북산정, 봐도 잊어버리고, 다음 블로그 http://m.blog.daum.net/duddnr1052/408?np_nil_b=2 -> 답사 사진.
- 외토리 안쪽 양천강이 굽어도는 곳에 – 합천 북산정, aprilmin님의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prilmin/221949104123 -> 2020년 사진. / 1608년 북암사를 건립해 류덕룡을 추모했다 ; 몰년이 1644년이므로 ‘추모’라는 표현이 맞지 않음. ‘문하생’관련 정보(덕천사우록 기록 기반)에 따르면 그가 합천에 옮겨온 후 지었다는 ‘북산정’을 이르는 것으로 보임. / 1868년 북암사가 훼철된 후 문중에서 빈 터에 정자를 세우고 북산정이라고 했다.
- 남명 조식 선생의 문하생, 행복한 우연,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star50600/100108034738
- 9세 때(1571년, 신미)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최영경, 하응도 등과 더불어 의리공사(義利公私)를 강구하였다({德川師友淵源錄}, 卷4, [門人續集] 柳德龍; {北山記}).
- 22세 때(1584년, 갑신) 봄에 보리사(菩提寺)에서 박사제(朴思齊)와 더불어 연마하였고,
- 23세 때(1585년, 을유) 함안의 정구(鄭逑)를 뵈러 가서 공부하였다.
- 27세 때(1589년, 기축) 유종지가 옥사에 연루되어 화를 당하자, 이로부터 거업(擧業)을 일삼지 않고 침잠하였다.
- 44세 때(1606년, 병오) 4월에 덕천서원을 배알하였고, 이대기, 권도, 박인, 하홍도 등과 더불어 며칠간 공부하다가 돌아왔다.
- 46세 때(1608년, 무신) 3년상을 한결같이 하였고, 가을에 삼가(三嘉) 토동(兎洞)으로 옮겼다. 뇌룡(雷龍)의 북암(北巖)위에 서실을 북산정(北山亭)이라고 하였다. 매일 사우와 더불어 '심경', '근사록' 등을 강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