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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동 한주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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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1년 3월 1일 (월) 03: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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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동 한주종택
Hanju Head House in Daesan-ri
대산동 한주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대산동 한주종택
영문명칭 Hanju Head House in Daesan-ri
한자 大山洞 寒洲宗宅
주소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한개2길 43 (대산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45호
지정(등록)일 1983년 6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일곽
웹사이트 대산동 한주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주종택은 영조 43년(1767)에 이민검이 처음 지었고, 고종 3년(1866) 이진상이 고쳐 지었다. 1910년 이승희가 아버지인 한주(寒州) 이진상의 호를 딴 한주정사(寒洲精舍)를 지으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으며, 그의 호를 따서 한주종택이라고 불렀다. 또 지금 소유자의 할머니가 상주 동곽에서 시집을 왔다고 하여 ‘동곽댁’이라고도 부른다.

이진상의 아들이면서 제자인 이승희와 손자 이기원, 이기인은 일본이 우리의 국권을 빼앗는 데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다. 삼부자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다.

안채, 사랑채, 아래채, 곳간채, 중문채, 대문채, 사당, 한주정사, 관리사 등 모두 11동으로 이루어졌다. 가옥은 한주정사가 있는 구역과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구역으로 나누어졌으며, 한개마을의 다른 가옥들에 비해서 그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안채가 ‘튼 ㅁ’자 모양으로 배치된 점 등은 한개마을 집들의 공통된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영문

Hanju Head House in Daesan-ri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입향조 이우의 11대손인 이민검이 1767년에 처음 지었고, 이민검의 증손자인 이진상(1818-1886, 호: 한주)이 1866년에 고쳐 지었다. 이진상의 아들 이승희(1847-1916)가 1910년 아버지의 호를 딴 정자인 한주정사를 짓고, 집의 이름을 한주종택이라고 불렀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이승희와 아들 이기원(1885-1982), 이기인(1894-1981)은 모두 일제에 저항하여 독립운동을 하였고, 삼부자가 모두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받았다.

현재 이 집은 대문채, 안채, 사랑채, 아래채, 곳간채, 중문채, 한주정사, 사당, 관리사 등 모두 11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구역과 한주정사가 있는 구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개마을의 다른 가옥들에 비해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집의 또 다른 이름은 ‘동곽댁’이다. 이기원의 부인이 상주 동곽리 출신인 데서 비롯된 이름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