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삼화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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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삼화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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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전 삼화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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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 三花嶺 |
주소 | 경북 경주시 내남면 남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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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는 높은 곳을 의미한다. 이곳은 1925년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진 석조삼존불상(石造三尊佛像)이 출토된 곳이다.
『삼국유사』에 삼화령과 관련한 기록이 있다.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생의(生義)라는 스님이 도중사(道中寺)에 거주하였다. 하루는 꿈에 한 스님이 그를 데리고 남산으로 올라가 풀을 묶어서 표시를 하게하고, 산의 남쪽 마을에 이르러서 말하길, "내가 이곳에 묻혀있으니, 꺼내어 고개 위에 안치해주시오.”라고 하였다. 잠에서 깬 후 산에 올라 표시해 둔 곳을 찾아 땅을 파보니 돌로 만든 미륵[石彌勒]이 나왔으므로, 삼화령 위에 안치하였다. 이후 그곳에 절을 짓고 생의사(生義寺)라 이름하였다. 또 경덕왕(재위 742~765) 때 충담사(忠談師)*가 3월 3일과 9월 9일에 삼화령의 미륵세존(彌勒世尊)에게 차 공양을 하였다고 한다.
이곳에서 출토된 석조삼존불상의 본존은 의자에 앉아 있는 의자상(倚子像)으로 일반적인 불상의 표현방식과는 전혀 다른 특이한 형식이다.
- 충담사(忠談師):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그가 지은 향가 ‘안민가(安民歌)’와 ‘찬기파랑가(讚耆婆郞歌)’가 『삼국유사』에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