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명재고택
논산 명재고택 Myeongjae House, Nons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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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논산 명재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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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yeongjae House, Nonsan |
한자 | 論山 明齋古宅 |
주소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교촌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 |
지정(등록)일 | 1984년 12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곽 |
웹사이트 | 논산 명재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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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조선 숙종 때의 학자인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 선생의 고택(古宅)이다. 윤증은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자인(子仁), 호는 명재(明齋)·유봉(酉峰)이다. 성혼(成渾)의 외증손이고, 아버지는 윤선거(尹宣擧)이며,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될 때 소론의 영수로 추대되어 송시열(宋時烈)과 대립하였다. 고택은 완만한 경사지에 입지해 한옥의 규범을 충실히 구현하고 있으며, 집 앞에 넓은 마당과 왼쪽에는 장방형의 인공 연못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 대문 역할을 하는 남쪽 중문으로 문간채가 이어져 있어서 전체 구조는 ㅁ자형을 이룬 형태이다. 안채는 높지 않은 기단 위에 가운데 마당을 둔 멀 경(冂)자 형인데, 내외벽으로 가려진 폐쇄적인 공간이 선생의 절제된 미덕을 반영하는 듯 소박한 모습이다. 안채의 동쪽 뒤편에는 사당(祠堂), 그 앞에는 당당한 형태를 지닌 사랑채가 위치하고 있다.
현존 건물은 개수하여 19세기의 건축양식을 보여주고 있지만, 건축의 기법은 18세기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또한 안채와 사랑채의 평면은 대체로 중부지방 양식을 따르면서도 특이하게 남도풍을 가미한 형태이다. 명재고택은 구조가 간결하면서도 견실한 형태를 보이며, 보존상태도 양호해서 조선시대 우리 지방 양반가옥의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영문
Myeongjae House, Nonsan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인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1714)이 살던 집이다.
윤증은 성리학의 대가인 윤선거(1610-1669)의 아들로, 아버지를 비롯하여 당시 정계와 학계의 거두였던 송시열(1607-1689) 등 최고의 학자들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학업과 행실이 뛰어난 것으로 조정에 천거되어 여러 차례 벼슬을 받았으나, 모두 사양하고 평생 학문에 전념하였다. 40세가 되던 해에는 이곳 마을에 강당을 건립하고 후학을 양성하였다.
고택은 윤증의 말년인 18세기에 지었다고 전하며, 후손들이 대대로 살며 여러 차례 보수했기 때문에 19세기의 건축 양식이 나타난다. 완만한 경사지에 위치한 이 고택은 집 앞에 넓은 마당과 장방형의 인공 연못이 있다. 맨앞에 사랑채가 있고, 사랑채 오른쪽에 늘어선 장독에는 윤증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비법으로 만든 전통 장류가 저장되어 있다. 사랑채 왼쪽에 있는 대문을 통해 안채 영역으로 진입할 수 있다. 안채 왼쪽에는 곳간채가 있고, 안채 오른쪽 뒤편에는 담장으로 둘러싸인 별도의 사당 영역이 있다. 전체적으로 구조가 간결하고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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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 서정호, 『한옥의 미』, 경인문화사, 2010. https://terms.naver.com/entry.nhn?cid=42672&docId=1529440&categoryId=42672
- 윤증(尹拯),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25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