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Modern History and Culture Street, 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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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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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Modern History and Culture Street, Yeongju |
주소 | 경상북도 영주시 두서길 73-6 (영주동)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재 제720호 |
지정(등록)일 | 2018년 8월 6일 |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기타 시설물 |
수량/면적 | 26,377㎡(153필지) |
웹사이트 |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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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원도심의 북쪽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광복로와 관사골을 이어주는 두서길의 일부이다. 이곳은 구 영주역사의 배후에 형성된 철도관사, 정미소, 이발소, 근대한옥, 교회 등 지역의 근대 생활과 거리 경관을 보여주는 건축물이 남아 있는 거리이다.
근대역사문화공간 요소로서 영주 지역의 철도 역사와 철도 역무원의 생활주거를 알아볼 수 있는 ‘구 영주역 5호 관사’ 및 ‘구 영주역 7호 관사’, 근대시기의 주거생활을 보여주는 ‘영주동 근대한옥’, 영주지역에서 80여 년 동안 지속되어온 장인의 이용업 생활사를 보여주는 ‘영광이발관’, 근대산업시기 양곡가공업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풍국정미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근대산업시기를 거치면서 영주시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고 삶의 흔적을 남긴 ‘영주 제일교회’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는 1942년 중앙선이 개통되면서 건축된 구 영주역사를 중심으로 인근에 형성된 근대 건축물들이 밀집되어 있는 공간이다. 원도심의 북쪽을 수평으로 가로지르는 광복로와 관사골을 이어주는 두서길의 일부가 포함된다.
두서길 일대의 관사촌은 일대의 근대 주거지 형성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철도 개통 이전인 1935년부터 형성되었으며, 남아있는 9동의 관사 중 5호와 7호 관사가 개별문화재로 등록되었다. 또 인근에 관공서 및 학교, 시장 등이 활성화되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광복로 일대의 생활 시설 중 영광이발관과 풍국정미소가 있으며, 근대도시로 발전하던 당시의 주거 문화를 알려주는 영주동 근대한옥, 일제강점기 때부터 지금까지 지역민들의 삶과 함께한 영주 제일교회가 있다.
이곳은 1961년의 대홍수로 시가지의 3/4이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후 정부의 주도로 남쪽에 신시가지가 조성되었고, 철도의 중심이 되는 영주역사가 1973년 신시가지로 옮겨가고, 1980년 영주시청도 옮겨가면서 침체기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영주시의 근현대 생활의 모습이 켜켜이 쌓인 구 도심을 다시 활성화시켜 도시의 정체성을 고민하자는 취지 하에 2018년에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 자료
- 철도와 함께 시작된 근대도시 영주, 『우리 곁에 남아있는 근대문화재 이야기』, 문화재청, 2019.
- 문화재위원회 근대문화재분과 제7차 회의록, 2018
- 부석사와 소수서원이 아닌 영주시를 찾아서, 한국일보, 2020.11.28.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A2020112310590005529 -> 거리 지정 지도 및 2020년 기준 사진들 확인 / 1961년 수해 관련 진행내용 요약되어 정리(참고함)
- 영주, 생활사를 재발견하다 – 영주 근대역사문화거리, 근대문화 역사유산, 지역N문화 역사문화유산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1024#n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