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 무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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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안 무진정
Mujinjeong Pavilion, Haman
대표명칭 함안 무진정
영문명칭 Mujinjeong Pavilion, Haman
한자 咸安 無盡亭
주소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지정(등록) 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제158호
지정(등록)일 1976년 12월 2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함안 무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2019

무진정은 무진(無盡) 조삼(趙參)을 추모하기 위하여 후손들이 1567(명종 22)에 세운 정자이다. 그는 17세인 1489년에 진사시 합격하여 함양·창원·대구·상주 등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정자는 임진왜란 무렵에 불타 없어졌는데 1929년 그의 후손들이 다시 만들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무진정은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의 정자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이런 양식은 전라도 지역과 인근의 함양․거창 지역에서 흔히 보인다. 무진정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무진정은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반영하고 있으며, 영․호남 정자 문화의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2020

무진정은 1542년 조삼(趙參)선생(1473~1544)이 후진양성을 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생은 17세인 성종20년(1489)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2년(1507)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에서 지방관을 지냈고, 중앙에서는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냈다.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킨 생육신 어계 조려 선생의 손자이다. 독서를 좋아한 올곧은 성격으로 성균관의 생원일 때 연산군 폭정의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을 처벌하자는 상소를 올려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정자는 출입문인 동정문(動靜門)과 정면 3칸, 옆면 2칸으로 이루어졌다.

정자의 중앙에는 마루방을 두고, 양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마루방과 툇마루에는 개방이 가능한 들문을 설치하여 공간 활용을 더하였다. 단순하고 소박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준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다시 지었다.

우리나라 최초서원인 소수서원의 창시자인 주세붕이 무진정 기문을 지었으며, 무진정 정자 앞에는 함안낙화놀이가 열리는 연못이 있다.

국문 2020

무진정은 조삼(趙參)선생께서 후진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시기 위하여 함안면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으신 정자로서 자신의 호를 따라 무진정(無盡亭)이라 명명하였다. 무진 조삼선생은 1473년(성종 4년)에 태어나시어 성종 20년(1489)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 · 창원 • 대구 ·성주·상주의 부사와 목사를 역임하시고, 내직으로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976년 12월 20일 유형문화재 제158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조선시대의 문신인 무진 조삼(無盡 趙參, 1473~1544)이 후진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지은 정자이다.

조삼은 150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독서를 좋아하는 올곧은 성격이었다고 하며, 사화로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현재의 정자는 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특별한 장식이나 조각이 없이 전체적으로 소박한 건물이다. 가운데에 마루방이 있고 사방이 툇마루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루방과 툇마루 사이에 들문을 설치해서 필요할 때는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무진정이 처음 지어질 당시 풍기(지금의 영주 지역) 군수를 지냈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무진정의 기문을 지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가운데 방은 정자건축에서 일반적인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이 있고 ...
  2. 분야별 자문위원2
    • 과거에 급제하였으므로, ‘문신’임을 소개할 필요는 없음.
    • “독서를 좋아하는 올곧은 성격”, “사화로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등 추상적이고 근거가 명확치 않은 설명은 배제하는 것이 좋겠음.
    • 정자의 구조가 호남 지역의 보편적 구조와 일치하는 특색을 소개할 필요가 있음.
    • 무진정의 정자 건물로서의 장점과 특성을 소개할 필요가 있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무진정이 처음 지어질 당시(무진정이 처음 지어질 당시 -> 처음 지어질 당시) 풍기(지금의 영주 지역) 군수를 지냈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무진정의 기문을 지었다.

2차 수정

조선시대의 문신인 무진 조삼(無盡 趙參, 1473~1544)이 후진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지은 정자이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조삼은 150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사화로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특별한 장식이나 조각이 없이 전체적으로 소박한 건물이다. 사방에 툇마루를 두고 중앙 한 칸을 마루방으로 만들었다. 마루방에는 벽을 설치하지 않고 창호지 바른 문과 창을 달아, 필요할 때는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고 주변의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다. 건물 좌‧우 측면과 후면에는 판자로 된 창을 달아 비바람을 막게 하였다.

처음 지어질 당시 풍기(지금의 영주 지역) 군수를 지냈던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 무진정의 기문을 지었다.

영문

Mujinjeong Pavilion, Haman

2019

This pavilion was first established in 1542 by Jo Sam (1473-1544, pen name: Mujin),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s a place to educate the next generation and spend his later life.

Jo Sam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07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is said to have enjoyed reading and had an upright character. When there was a purge of literati that stirred the government, he resigned and returned to his hometown where he lived in seclusion.

The current pavilion dates to 1929. It consists of an enclosed wooden-floored hall in the center surrounded by wooden verandas on all sides. The doors of the hall can be lifted and fixed upward so that the entire space can be opened up when necessary.

There is a record about the first construction of the pavilion written by Ju Se-bung (1495-1554), the then magistrate of Punggi (today’s Yeongju area) and the founder of Korea's first private Confucian academy, named Sosuseowon.

2020

영문 해설 내용

2019

조선시대의 문신인 조삼(1473-1544, 호: 무진)이 후진을 양성하고 여생을 보내기 위해 1542년에 지은 정자이다.

조삼은 1507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독서를 좋아하는 올곧은 성격이었다고 하며, 사화로 정세가 어지러워지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돌아와 은거하였다.

현재의 정자는 1929년 다시 지은 것이다. 가운데에 마루방이 있고 사방이 툇마루로 둘러싸여 있으며, 마루방과 툇마루 사이에 들문을 설치해서 필요할 때는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무진정이 처음 지어질 당시 풍기(지금의 영주 지역) 군수로 한국 최초의 서원인 소수서원을 설립하였던 주세붕(1495-1554)이 무진정의 기문을 지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