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운림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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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 운림고택
Ullim House, Cheongdo
청도 운림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청도 운림고택
영문명칭 Ullim House, Cheongdo
한자 淸道 雲林古宅
주소 경북 청도군 금천면 임당2길 14 (임당리)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45호
지정(등록)일 2005년 1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2필지/3,708㎡
웹사이트 청도 운림고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청도 운림 고택은 구한말의 내시(內寺)로 상선(종2품)의 품계를 받은 운림 김병익(金秉翼, 1842~1925)이 건립했다고 전한다. 청도 임당리는 조선 중기부터 400여 년간 내시 가문이 살았던 곳이며 이 집에서 나온 가계 문서에는 내시들의 2세부터 16세까지 이름과 실제 관직, 부인의 본관, 산소의 위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집은 큰 사랑채, 중 사랑채, 안채, 큰 고방채, 작은 고방채, 사당,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대궐 쪽 방향인 북향으로 놓여 있다. 큰 사랑채에서는 대문부터 안채로 들어가는 동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으며, 중사랑채 좌측의 겹문을 통해서만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이러한 가옥 구조는 보통의 양반 가옥보다 더욱 엄격하게 안채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구조이다.

청도 운림 고택은 서울·경기지역 외에 남아 있는 유일한 내시 가옥으로, 조선시대 가옥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영문

Ullim House, Cheongdo

This house is said to have been built by Kim Byeong-ik (1842-1925, pen name: Ullim), a eunuch of the royal cour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It is the only extant house of a eunuch outside of Seoul and Gyeonggi-do Province.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 main men’s quarters, a secondary men’s quarters, a women’s quarters, a main storehouse, a secondary storehouse, and a shrine. The women’s quarters faces north toward the royal palace in the capital. The main men’s quarters is located to the left of the main gate on an unusual angle to observe anyone going to and coming from the women’s quarters, which could only be accessed via the inner gate on the left of the secondary men’s quarters. This unusual layout aimed to minimize the exposure of the women’s quarters and fully control access to it. The secondary men’s quarters, women’s quarters, and two storehouses form a square layout with a courtyard in the middle. The shrine is located in the rear right of the property.

The village where this house is located, Imdang-ri, was home to a lineage of eunuchs for 400 years since the mid-Joseon period. Even though eunuchs were unable to have their own biological children, they still got married to women to form socio-policial ties and formally adopted an orphan or another eunuch as their male heir to create a male lineage, which was of great importance in the Confucian culture of the time. The genealogical record of the family that lived in this house includes the names of the male lineage from the 2nd to the 16th generation, their official posts, the clans of their wives, and the locations of their tombs.

영문 해설 내용

운림고택은 조선 말의 내시였던 김병익(1842-1925, 호: 운림)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서울과 경기 이외의 지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내시 가옥이다.

이 집은 대문채, 큰사랑채, 중사랑채, 안채, 큰 고방채, 작은 고방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대궐 쪽 방향인 북향으로 놓여 있다. 대문 왼쪽에 있는 큰사랑채에서는 안채로 드나드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했으며, 중사랑채 왼쪽에 있는 문을 통해서만 안채로 드나들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보통의 양반 가옥보다 더욱 엄격하게 안채의 노출을 최소화하고 출입을 통제하기 위한 구조이다. 중사랑채, 안채, 두 고방채는 마당을 가운데 두고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사당은 집의 오른쪽 뒤편에 있다.

이 집이 위치한 임당리는 조선 중기부터 400여 년간 내시 가문이 살았던 곳이다. 내시들은 생물학적으로 친자식을 가질 수 없었지만, 혼인을 통해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했고 고아나 고자 등을 입양하여 후계자로 삼기도 하였다. 이 집에서 나온 가계문서에는 이 가문의 2세부터 16세까지 이름, 관직, 부인의 본관, 산소의 위치 등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자료

  • 장희흥, 「조선후기 청도 내시부 통정 김일준가의 가계 계승」, 『역사민속학』 46, 2014, 314쪽 주석(4) -> 이성(異性), 독자(獨子)로 가계 계승. 김일준 가계문서 2~15세 이름과 실직, 부인의 본관, 산소 위치 기록
  • 청도 운림 고택, 『디지털청도문화대전』
  • 청도 운림 고택, 『지나간 시간을 읽다-민속문화재, 이야기를 입다』(문화재청, 2017)
  • 청도 운림 고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