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천 운구대
합천 운구대 Ungudae Rock, Hapche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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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합천 운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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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Ungudae Rock, Hapcheon |
한자 | 陜川 雲衢臺 |
주소 |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산23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남도 기념물 제262호 |
지정(등록)일 | 2006년 1월 12일 |
분류 | 자연유산/천연기념물/문화역사기념물/역사 |
시대 | 고려시대 |
수량/면적 | 1기 |
웹사이트 | 합천 운구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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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대(臺)'는 주변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이 곳 운구대는 마을 높은 곳에 있는 배처럼 생긴 바위이다. 고려 말에 소윤(少尹)을 역임한 만은 홍재(晩隱 洪載)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겠다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개성에서 내려와 은둔한 곳이다. ‘운구대(雲衢臺)’ 및 ‘만은선생장구지소(晩隱先生杖屨之所)’라는 글씨가 해서로 새겨져 있는데, 누가 언제 쓴 것인지 알 수 없다.
1786년 유림(儒林)의 건의로 운구대 옆에 운구서원(雲衢書院)을 세웠고, 그 뒤 평생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은거(隱居)한 고려의 유신(遺臣)인 만은 홍재, 모은 이오(茅隱 李午), 금은 조열(琴隱 趙悅)을 모셨다. 1833년에 한 차례 중수를 하였으나,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서원이 훼철된 뒤, 근래 그 자리에 운구서당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유신(遺臣) : 왕조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신하.
영문
Ungudae Rock, Hapcheon
영문 해설 내용
운구대는 마을 높은 곳에 있는 배처럼 생긴 바위로, 인근의 논밭과 마을의 전망을 내려다 볼 수 있는 곳이다.
운구대에는 각각 ‘구름이 오가는 통로’와 ‘만은이 머물던 곳’이라는 뜻의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누가 언제 쓴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만은은 고려 말의 문신 홍재의 호이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홍재는 조선 건국 후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키기 위해 이 마을에 와서 은거하였다고 한다.
1786년 운구대 옆에 운구서원이 세워졌다. 이곳에는 조선 건국 후 벼슬에 나가지 않고 은둔하며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를 지켰던 홍재, 이오, 조열 세 사람의 위패를 모셨다. 서원은 1833년 중수되었으나, 1868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932년 홍재의 후손이 옛 서원 터에 서당을 지었으며, 지금의 서당 건물은 2001년에 다시 지은 것이다.
참고자료
- 운구서원, 대한민국 구석구석(네이버 연동)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335689&cid=42856&categoryId=42856 -> 1923년에 홍재(洪載)의 후손인 홍승부(洪承富)등이 중심이 되어 문중의 뜻을 모아 선조가 은거하였던 두심동에 건물을 저어 운구서당이라 현판하였다.
- 함안 선비의 절개를 만나다, 경남신문, 2014.2.5. http://www.knnews.co.kr/news/articleView.php?idxno=1099816 -> 모은과 금은, 합천에 은거한 만은(晩隱) 홍재(洪載)를 영남의 삼은(三隱)으로 칭한다. 만은 선생은 합천 가회면의 운구대(雲衢臺)에서 시를 읊으며 세월을 보냈다. 1786년에 운구대 옆에 운구서원을 세워 영남 삼은을 봉향하다가 훼철된 후 지금은 운구서당이 세워져 있다.
- 우리지역 문화유적 소개 – 가회면 두심마을 운구대, 합천 인터넷 뉴스 http://m.hcinews.asia/view.asp?intNum=1807&ASection=001018 -> 운구서당(雲衢書堂)은 원래는 운구서원이었다. 1786년 조선 영조때 주변 유림들의 건의로 고려충신이기는 하나 충절의 선비정신을 나라에서도 인정하여 운구대 옆에 운구서원(雲衢書院)을 지어 1796년에 함안의 이오(李午). 조열(趙悅) 선생과 함께 홍재(洪載) 선생을 배향하던 곳이였다. 1871년 고종때 홍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毁撤)되었던 것을 후손들이 운구서당으로 복원관리해 오다가 수차례 중수하였으며 최근인 2001년에 홍동식(洪東植) 후손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중수(重修)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