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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옥봉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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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2월 11일 (금) 13:4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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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옥봉 고분군
Ancient Tombs in Okbong-dong, Jinju
진주 옥봉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진주 옥봉 고분군
영문명칭 Ancient Tombs in Okbong-dong, Jinju
한자 晋州 玉峰 古墳群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산546번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
지정(등록)일 1974년 2월 16일
분류 유적건조물/무덤/무덤/고분군
수량/면적 97㎡
웹사이트 진주 옥봉고분군,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진주 옥봉고분군은 진주시가지 동편에 있는 수정봉과 옥봉에 있는 가야시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지배세력의 무덤이다.

기록에 의하면 수정봉과 옥봉의 정상부와 능선을 따라 7기의 큰 무덤이 있었는데 지금은 도시화로 3개의 무덤만 흔적이 남아있다. 3개의 무덤 중에서 옥봉에 있는 1개의 무덤만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7개의 가야시대 무덤은 1910년경 일본인 세끼노[關野貞]에 의해 도굴에 가까운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후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여기에서 출토된 유물의 대부분은 일본 동경대학(東京大學)에 보관되어 있다. 출토된 유물은 철제 말갖춤과 각종 토기류 등인데 유물의 규모와 종류 등을 통하여 가야시대 진주지역을 지배하던 지배충의 세력과 규모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문화유산포털과 진주관광 웹사이트에는 원래 7기의 무덤이 있었으나, 1910년 수정봉 2, 3호분과 옥봉 7호분 총 3기의 조사가 이루어졌고, 지금은 수정봉에 있는 2기만 남아있다고 함. 만약 현재 1기만 남아있다면 '고분군'이라는 명칭은 수정이 필요함.

영문

Ancient Tombs in Okbong-dong, Jinju

영문 해설 내용

6세기 전반에 조성된 가야 지배세력의 무덤이다. 기록에 의하면 진주 시가지 동편의 능선에 원래 7기의 큰 봉토분이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굴과 도시 개발 등으로 인해 지금은 3기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중 1기만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0년에는 7기의 무덤 중 3기가 일본인 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세 무덤 모두 굴식돌방무덤의 형태로 만들어졌고, 가야 지배층의 의례용 토기인 원통모양 그릇받침을 비롯해 긴목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의 다양한 토기류와 철제 말갖춤이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현재 일본 도쿄대학교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자료

  • 진주 옥봉 고분군, 진주 관광 https://www.jinju.go.kr/02793/02258/02284.web?amode=view&idx=413 -> 원래 대형의 봉토분 7기가 분포되어 있던 이 고분군 일대는 일제시대 이래 고분의 파괴와 함께 개간이 진행되어 지금은 단 2기의 고분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 가야 자료 총서 4권 - 가야 발굴조사 자료편 Ⅱ,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pp.396-397 -> 발굴조사 간략 정보 ; 2007년 진주 옥봉 금산공원 옆 도시계획도로 개설로 인해 동서문물연구원에서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식석곽묘 1기가 확인되었고,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9점이다. 석곽묘는 등고선과 평행하게 조영되었고 장축방향은 동-서향이며 규모는 376㎝×105㎝×38㎝로 세장방형이다. 최하단석 축조에 있어 3벽은 점판암계 판석을 사용하여 수적하였고, 서단벽은 할석으로 평적하였다. 장벽의 최하단석은 기초 홈을 파서 수적한 후 그 위로 2단 이상을 평적하여 조성하였다. 출토유물은 동단벽쪽에서 소가야계의 대부완, 파배가 각각 1점씩 출토되었으며, 서단벽쪽에서 대가야계의 개배 6세트와 방추차가 확인되었다. 이러한 소가야계와 대가야계 유물 양상으로 석곽묘의 조성 시기는 6세기 중반에 조성된 것으로 판단된다.
  • 가야 자료 총서 2권 - 가야 일제강점기 자료편,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2018, pp.77-84 -> 1910년 발굴조사 기록
  • 진주옥봉고분군, 경남일보, 2010.05.10. http://www.gnnews.co.kr/news/oldArticleView.html?idxno=244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