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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대봉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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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대봉재사
Daebongjaesa Shrine, Yeongdeok
영덕 대봉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영덕 대봉재사
영문명칭 Daebongjaesa Shrine, Yeongdeok
한자 盈德 大峯齋舍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길 44 (미곡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81호
지정(등록)일 1999년 12월 30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영덕 대봉재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대봉재사는 조선 전기의 문신인 충장공 권자신(忠壯公 權自愼)을 가운데 두고 권책(權策)과 권상길(權尙吉)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건물이다.

권자신은 조선 시대 때 단종을 복위하려다가 사육신과 함께 세조 2년(1456)에 살해되었다. 권전은 단종의 외할아버지인데, 그의 증손자인 권책은 13살 때 단종 복위 사건에 관련되어 영해로 귀양을 와서 머물러 살았다. 권상길은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했다.

대봉재사는 현종 1년(1835)에 대봉산 기슭 아래 ‘충현사’란 이름으로 세웠다가 현종 13년(1847) ‘대봉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폐쇄되었는데 1911년 다시 고쳐 지었다. 몸채인 추감루는 앞면 3칸, 옆면 1칸 반 크기인데 제사를 지낼 때 웃어른들이 머물렀다. 축대를 높여서 지었으며,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 권책이 권전의 증손자가 맞는지 확인 필요. 권전 동생의 손자인 것으로 보임.

영문

Daebongjaesa Shrine, Yeongdeok

Daebongjaesa Shrine is where the spirit tablets of three people from Andong Gwon Clan, namely Gwon Ja-sin (?-1456), Gwon Chaek (1444-?), Gwon Sang-gil (1610-1674) are enshrined, and it is also a place for ancestral rituals. It was first erected in 1835 as a shrine of Chunghyeonsa Temple, and in 1847 it was established as Daebongseowon Confucian Academy. It was once demolished in the late 19th century when most shrines and Confucian academies were shut down by a nationwide decree. The current building was built in 1911.

Gwon Ja-sin (?-1456) was the uncle of King Danjong (r. 1452-1455), and Gwon Chaek is the brother of Gwon Ja-sin’s cousing. In 1455, after King Danjong’s throne was usurped by his uncle King Sejo (1455-1468), Gwon Ja-sin planned the restoration of King Danjong but after disclosure he was sentenced to death. Gwon Ja-sin was charged for plot of treason which led to the execution of all male members from his family. Due to young age, only Gwon Chaek was sent into exile in Yeongdeok-gun, and afterwards his descendants lived there for generations. Gwon Sang-gil, one of his descendants, passed the Nine Chinese Classics examination (생원시) in 1635 and then enrolled in Seonggyungwan National Academy. In 1636, when the Manchus invaded Joseon, he followed King Injo (r. 1623-1649) who took refuge in Namhansanseong Fortress and he opposed the surrender to Qing China. However, in the end King Injo surrended and after the war ended, Gwon Sang-gil returned to his hometown and dedicated his life to his studies.

The shrin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and the main house quarters(?). The main house quarters is used as a place where all the elders of the family stay when the rituals take place.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with two underfloor-heated rooms to either side.

영문 해설 내용

안동권씨 인물들인 권자신(?-1456), 권책(1444-?), 권상길(1610-1674)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1835년 충현사라는 사당으로 처음 세워졌고, 1847년에는 대봉서원으로 설립되었다가, 19세기 말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지금의 건물은 1911년에 지은 것이다.

권자신(?-1456)은 단종(재위 1452-1455)의 외삼촌이고, 권책은 권자신의 사촌형제의 아들이다. 1455년 단종이 숙부인 세조(재위 1455-1468)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권자신은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었고 사형 당했다. 권자신이 역모를 했다는 죄명으로 온집안 남자들이 처형 당했으나, 당시 나이가 어렸던 권책만은 영덕으로 귀양을 왔고, 이후 그의 후손들이 세거하였다. 후손인 권상길은 1635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성균관에 입학하였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한산성으로 피신하는 인조(재위 1623-1649)를 따라갔고, 청나라에 항복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그러나 결국 인조는 항복하였고 권상길은 전쟁이 끝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오직 학문에 전념하였다.

재사는 대문채와 몸채로 이루어져 있다. 몸채는 제사를 지낼 때 집안의 웃어른들이 머무르는 곳이며, 가운데 마루가 있고 양쪽에 온돌방이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