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내당
해설문
국문
수원읍을 팔달산 아래로 옮기면서 수원읍의 관청 내사(內舍)로 지은 집이다. 내사는 수령이 가족과 함께 거처하기 위해 마련한다. 수원읍의 경우에는 관청 건물을 행궁으로도 이용했기 때문에 복내당은 행궁을 증축하기 전까지는 왕의 숙소로도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한나라 무장인 조충국(趙充國)이 말한 ‘모든 일이 밖에서 제대로 이루어지면 복이 안에서 생겨난다(擧得於外, 福生於內)’는 뜻을 취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창건하면서 정조가 직접 복내당 글씨를 써서 현판을 걸었다. 처음에는 북쪽 장남헌(봉수당), 동쪽 은약헌(유여택)과 함께 행궁의 중심 건물이었지만, 행궁을 증축하면서 왕이 머무는 경우는 없고 수령의 숙소로만 이용되었다. 처음에는 역 ㄱ자형의 작은 규모였다가 1794년(정조18) 가을에 증축이 이루어져서 북쪽으로 온돌 4칸반이 추가되어 전체 ㄷ자 형태가 되고, 서쪽에 서별당이 들어서고 동남쪽으로 행각이 늘어나서 주변을 둘러싸게 되었다. 건물은 20세기 초에 행궁이 도립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철거되었다가 지난 2002년 행궁을 복원하면서 다시 지어졌다. 정조가 쓴 복내당 현판은 전하지 않으며 현재의 현판은 건물을 복원하면서 새로 써서 걸었다.
- 연혁 - 1789년(정조13) 건립 / 1794년(정조18) 증축 / 2002년 복원
- 구조 - 겹처마 맞배지붕
영문
Bongnaedang Hall
Bongnaedang, built in 1789, was one of the original main buildings of the secondary palace and was used as the sleeping chamber of the king. Later, when the secondary palace was expanded in 1794, Jangnakdang Hall was built as the king’s new sleeping chamber, and this hall came to be used only by local magistrates. The name “Bongnaedang,” chosen by King Jeongjo, means “hall with fortune from inside.”
영문 해설 내용
복내당은 1789년에 건립되었으며, 처음에는 행궁의 중심건물로서 왕의 숙소로 사용되었다. 1794년 행궁이 증축된 이후로는 수령의 처소로 쓰였다. 복내당이라는 이름은 정조가 직접 지은 것이며, ‘복은 안에서 생겨난다’는 뜻이다.
수원시 관청 내 장관이 거처하는 숙소로 지은 건물이다. 조선시대 지방 장관으로 부임하는 사람들은 가족을 거느리고 가지 않고 혼자 근무지에서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때문에 장관의 숙소는 규모가 크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곳은 처음에는 소규모로 지었다가 행궁으로 사용될 것을 대비해서 시설을 늘렸다. 2002년에 복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