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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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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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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량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한량무
영문명칭 0
한자 閑良舞
주소 경상남도 진주시 판문동 477-2(한량무보존회)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3호
지정(등록)일 1979년 5월 2일
분류 무형문화재
웹사이트 한량무,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한량무는 한량*, 승려, 색시, 주모, 별감*, 마당쇠, 상좌* 등 일곱 명이 등장하여 추는 놀이 춤이다. 춤의 내용은 색시를 사이에 두고 한량, 승려, 별감이 사랑싸움을 벌이는 과정에서 지조(志操) 없이 놀아난 색시가 모두에게서 버림을 받고 오갈 데 없게 되는 내용이다.

한량무는 당시의 사회상을 빗대어 풍자하는 내용으로 말이 없이 추는 극춤(劇舞)이다.

춤사위는 한량의 고아한 춤사위, 승려의 파계춤사위, 별감의 남성적 기개를 나타내는 춤사위, 색시의 애교춤사위, 주모의 꽁닥춤사위, 마당쇠의 능글맞은 춤사위 등 다양하고 익살스러운 춤사위가 있다.

이러한 극춤은 현재까지 남아 있는 예가 드물어서 민속무용 연구자료로 가치가 있는 민속춤이다.


  • 한량 : 관직이 없는 양반을 일컫는 말인데 점차 변하여 돈 잘쓰고 놀고 먹는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
  • 별감(別監) : 고려ㆍ조선 시대에, 조사ㆍ감독ㆍ취렴(取斂) 따위를 위하여 지방에 보내던 임시 벼슬
  • 상좌(上佐) : 스승의 대를 이을 여러 승려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을 이르는 말.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한량무는 한량과 승려, 별감이 한 여인을 유혹하는 내용을 춤으로 표현한 무용극이다. 조선 후기 사당패의 마당극 놀이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나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다. 1910년 이후 기방에서 성행했으며, 진주 부사를 지낸 정현석이 편찬한 『교방가요』에 기록이 남아있다.

진주에 전승되는 한량무는 한량, 승려, 색시, 상좌가 중심이 되는 4인무였으나, 1979년 무형문화재로 지정될 때 주모, 별감, 마당쇠를 추가해 7인무로 재구성했다.

총 9마당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타락한 선비, 파계한 중, 정조없는 색시, 게으른 관리 등 당대의 현실을 풍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의상은 조선 시대의 복식을 착용하는데 배역에 따라 서로 다른 옷차림과 춤을 선보인다.

한량무는 기녀들이 연희하던 최초의 극 형식 춤으로, 궁중계의 춤도 아니고 순수 민속춤도 아닌 교방계류의 무용극이라는 의의가 있다.


  • 한량은 일정한 벼슬없이 놀고 먹는 양반을 말하며, 상좌는 승려의 후계자를 말한다.
  • 한량무는 서울·경기 지역과 경상 시역에 전승되는 극적 구성의 문화재 춤과 20세기 후반에 만들어져 남성 혼자 추는 홀춤이 있다. 경상도 지역의 한량무는 진주권번 계열이 네 명, 양산권번 계열이 일곱 명의 구성으로 극이 이루어진다
  • 진주 한량무는 본래 한량, 승려, 색시, 상좌가 중심이 되는 4인무로 조선 고종(재위 1863-1907) 때 궁중 무희였던 최순이(1892~1969)가 고향으로 돌아와 관청의 예기들에게 전승하였고, 1969년 진주권번의 ‘강귀례’에 의해 재연된 후 진주검무 회원들에게 전수되었다. 지금의 진주 한량무는 1979년에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김덕명(1924-2015)이 주모, 별감, 마당쇠를 추가해 7인무로 재구성한 것이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