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산사 빈일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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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양양 낙산사 |
해설문
국문
빈일루는 동해에 떠오르는 해를 맞이하는 누각*이란 뜻이다. 건물이 처음 지어진 시기는 정확하지 않다. 1767년 박종이 쓴 기행문인「동경유록(東京遊錄)」에는 빈일료라고 하며, 서쪽에 있던 송월료*와 동서로 짝을 이뤄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숙종이 친히 쓴 어제시(御製詩)가 있었으며, 밖을 내다보면 푸른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고, 해와 달이 떠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1928년 간행된『건봉사급건봉사말사사적(乾鳳寺及乾鳳寺末寺史蹟)』에는 1888년(고종 25)에 선학스님이 고쳐 지었고, 1912년에 해성스님이 고쳐 지으면서 남긴「낙산사빈일루중수기(洛山寺賓日樓重修記)」가 있다. 1928년에 빈일루 규모는 8칸이었다고 한다.
빈일루는 2005년까지만 해도 없었으며, 지금 건물은 2005년 화재 이후 김홍도의 <낙산사도>*를 토대로 발굴하여 2009년에 복원한 것이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2층 건물이며, 지붕 앞면은 팔작, 뒷면은 맞배지붕으로 설계하였다. 건물의 주초석은 양양 마을의 돌을 사용했고 누각의 기둥은 지난 2005년 화마를 견딘 느티나무와 소나무를 손질해서 세웠다. 현판은 총무원장을 지낸 가산 지관 스님이 썼다.
- 누각(樓閣): 다락처럼 마루를 땅에서 높이 띄운 건물.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문과 벽이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 송월료(送月寮): 달을 배웅하는 요사채
- 낙산사도(洛山寺圖): 김홍도가 1788년에 정조의 명으로 금강산 및 강원도 지역을 돌아다니며 제작한『금강사군첩(金剛四郡帖)』에 수록된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