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산정사
학산정사 Haksanjeongsa Hall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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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학산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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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Haksanjeongsa Hall |
한자 | 鶴山精舍 |
해설문
국문
위양리 일원에 처음으로 정착한 안동 권씨들의 조상인 학산 권삼변(1577~1645)이 후학을 양성하던 강학소이자 그를 추모하는 건물이다.
산청에서 태어난 권삼변은 열 살 무렵 공부를 위해 당숙부가 사는 밀양 위양리로 왔다. 열여섯 살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면서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0여 년 만인 1604년 돌아와 학산정사를 건립하고 교육에 힘썼다. ‘학산’은 ‘학이 고향에 돌아왔다’는 의미로 취한 호이다.
학산정사는 그가 어머니 상을 치른 뒤 무덤 근처에 지은 초막에서 후학들과 강학을 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집이 비좁은 데다 산속까지 이어지는 길이 험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지었다.
1728년 노후한 학산정사를 새로 짓고 ‘학산’이라는 편액을 달면서 재실*다운 면모를 갖췄고, 1868년 현재 규모로 중건했다. 정면 5칸, 측면 1.5칸에 팔작지붕이다. 건축적 짜임새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재실의 규범을 잘 준수하고 있다.
- 재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묘소나 사당 인근에 지은 집.
영문
Haksanjeongsa Lecture Hall
This lecture hall was built to honor Gwon Sam-byeon (1577-1645, pen name: Haksan), who was the first person from the Andong Gwon clan to settle in Wiyang-ri Village.
Gwon was born in Sancheong and, when he was about ten years old, he moved to this village where his father's cousins lived. With the outbreak of the Japanese invasions in 1592, he was taken prisoner to Japan and only was able to return home in 1604. Not long after his return, his mother died, and he built a thatched cottage near his mother's tomb and devoted himself to learning. His virtue was so widely known that more and more people wanted to learn from him, and his cottage began to be used as a lecture hall. As the number of students increased, a larger lecture hall was required, so a new building was constructed on the current location at some later point.
The current building was built 1728 and renovated in 1868.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on either side.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안동권씨의 위양리 입향조인 권삼변(1577-1645)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정사이다.
산청에서 태어난 권삼변은 10살 무렵 당숙부가 사는 밀양 위양리로 왔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면서, 그는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갔다가 1604년에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는 어머니의 무덤 근처에 초막을 짓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그의 학덕이 널리 알려져 많은 사람들이 초막까지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그는 초막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점차 학생 수가 늘어나면서 새 강당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후 지금의 자리에 새 건물을 지었다.
지금의 건물은 1728년에 새로 짓고 1868년에 중건하였다.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