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분산성
김해 분산성 Bunsanseong Fortress, Gimha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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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김해 분산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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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Bunsanseong Fortress, Gimhae |
한자 | 金海 盆山城 |
주소 |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10-162 (어방동)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66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 |
시대 | 삼국시대 |
수량/면적 | 53,191㎡ |
웹사이트 | 김해 분산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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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김해 분산성은 분산 정상부를 머리띠처럼 돌로 둘러쌓은 산성이다. 가야 시대에 쌓았다고 전해지나 현재의 산성은 고려 우왕 때 김해 부사 박위가 왜구를 막기 위해 쌓은 것이다. 이와 관련한 내용을 담은 비석이 현재 충의각에 남아 있다.
분산성 북문 안쪽에는 해은사라는 사찰이 있다. 이 절은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온 허황옥이 자신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풍랑을 막아 준 용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뜻에서 지었다고 한다. 산성 남쪽 정상에는 신호를 전달하는 봉수대가 위치하고 있다. 조선 고종 9년(1872)에 그려진 「분산산성고지도」에는 5개의 봉으로 그려져 있으나 1998년에 과거의 모습을 추정하여 지금의 자리에 1개의 봉만 설치했다. 봉수대 뒤쪽의 큰 바위에는 조선 시대의 흥선 대원군이 쓴 ‘만장대(萬丈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김해 분산성에서 선두로 왜적을 막았던 공로를 칭찬하고자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뜻에서 ‘만장대’라는 칭호를 내렸다고 한다.
분산성은 김해는 물론이고 낙동강 하구와 남해안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해안 방어의 중요한 국방 시설로, 평지에서 방어가 어려우면 이곳에 들어와 성문을 굳게 닫고 장기전을 펼치며 성을 지키기도 했다. 동쪽 성벽을 발굴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신라, 고려, 조선 시대의 축성* 일부가 확인되었고 서쪽 성벽 안쪽에서는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 진아**, 무기고, 창고터가 발굴되어 「분산산성고지도」의 내용이 확인되었다. 또한 『김해읍지』에 의하면 분산성에 별장***을 장수로 두고 승군을 편성하여 지휘하게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해은사에도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지속적인 복원 사업으로 성벽 둘레 929m 중에 서북 30m 구간은 무너진 대로 남겨 놓고 나머지는 모두 새로 복원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축성: 군사적 방어 시설인 요새, 돌이나 콘크리트 따위로 쌓은 구축물인 보루, 포를 설치하는 시설물인 포대, 방어선을 따라 판 구덩이인 참호 등의 구조물.
- 진아(鎭衙): 군사상 중요한 지역에 설치한 지방 행정 구역인 진의 관아.
- 별장(別將): 조선 시대 지방의 산성, 나루 등의 수비를 맡은 종9품의 무관직.
영문
Bunsanseong Fortress, Gimhae
Bunsanseong Fortress is encircling the crest of Bunsan Mountain (327 m above sea level) and is located in a strategic point for coast defense as it gives a clear view over the estuary of Nakdonggang River and the whole area of the southern coast of Korea. It is believed that here originally there was a fortress during the Gaya confederacy period (42-562) and that during the rule of Kind U of Goryeo (r. 1374-1388), Bak Wi (?-1398), the local magistrate of Gimhae, restored the old fortress in order to stop the Japanese raiders. The fortress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but it was rebuilt in 1871.
The fortress measures 929 m in perimeter, and since 2000 when the restoration project started, all the walls were newly built with the exception of a 30 m section of the north-western wall. In the process of excavating the eastern wall, structures built in the style of Three Kingdoms period (57 BCE-668 CE), Goryeo period (918-1392) and Joseon period (1392-1910) were discovered, while inside the fortress, a water-collecting pond, a government office, an armory and a storehouse were discovered.
In the south of the fortress, on a mountain top there is a Beacon Station. According to a map of this fortress from 1872, there were five beacons/furnaces? in this beacon station but now only one of them, which was newly built in 1998, remains. Behind the Beacon Station, there is a large rock that has carved on it “Manjangdae”, which means “high fortress with only one road.” This is another name of the Bunsanseong Fortress given by Heungseon Daewongun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is name was given in order to celebrate the fact that the fortress was a forward operating base that played an important role in repelling the Japanese army.
Haeeunsa Temple is located, inside the fortress next to the northern gate. The temple’s name means “the favour of the sea” and it is connected to Queen Heo Hwang-ok, the queen consort of King Suro, the first king of Geumgwan Gaya. Originally a princess of Ayuta Kingdom, Queen Heo Hwang-ok crossed the sea to marry King Suro. She built this temple to repay the Dragon King’s kindness for stopping the wind and waves so she could arrive safely.
영문 해설 내용
분산성은 분산(해발 327m) 정상부를 둘러쌓은 성으로, 낙동강 하구와 남해안 일대가 한눈에 보이는 해안 방어의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이곳에는 가야시대에 쌓은 성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고려 우왕(재위 1374-1388) 때 김해 부사였던 박위(?-1398)가 왜구를 막기 위해 옛 산성을 보수하여 석성을 쌓았다. 조선시대인 임진왜란 때 무너졌다가 1871년에 다시 쌓았다.
성의 둘레는 929m이며, 2000년부터 진행된 복원 사업을 통해 서북쪽의 30여 m 구간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벽을 모두 새로 쌓았다. 동쪽 성벽을 발굴하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의 축성 방식이 확인되었고, 성벽 안쪽에서는 집수지, 관아, 무기고, 창고 등의 터가 발견되었다.
산성 남쪽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다. 1872년에 그려진 이 산성의 지도에는 이 봉수대에 5개의 봉이 있던 것으로 그려져 있으나, 지금은 1998년에 새로 만든 하나만 남아있다. 봉수대 뒤쪽의 큰 바위에는 '만 길이나 되는 높은 대'라는 뜻의 ‘만장대(萬丈臺)’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이 이름은 조선시대 흥선대원군이 분산성에 내린 별칭으로, 왜적을 물리치는 전진기지였다는 점을 기념하여 내린 이름이라고 한다.
산성 북문 안쪽에는 해은사라는 사찰이 있다. 사찰의 이름은 '바다의 은혜'라는 뜻으로, 금관가야의 제1대 왕인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과 관련이 있다. 원래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그녀는 수로왕과 결혼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 왔으며, 자신이 무사히 도착할 수 있도록 풍랑을 막아 준 용왕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이 사찰을 지었다고 한다.
참고자료
- 분산성에서 가야를 내려다보다-가야문화권 답사 21 김해 분산성 (오마이뉴스 09.11.13. 기사)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71231 → 분산성의 특징을 용어를 풀어서 설명하고 있으며, 정상부에 있는 사적비 1기의 전문이 있어 박위와 정현석이 언제 이 성을 수리해서 쌓았는지 확인 가능함.
- 우리 마을 기네스 <47> 김해 분산성 (국제신문, 2012-03-08)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600&key=20120309.22031184241 →분산성 내부 주요 시설(봉수대, 해은사 등) 정보 제공.
- 김해시, 국가사적 분산성 발굴현장 공개(경남뉴스투데이 2020.02.19.) http://www.knnews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6457 → 2019년 12월 발굴조사 내용 소략하게 확인 가능.
- 김해 분산성 동문지 발굴조사, 2019.1.1.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sy1851&logNo=22143152883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기존 학술조사 과정 요약 및 동문지 발굴조사 관련 정보(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자문위원회 제224집 내용 포스팅) 확인 가능
- 고대 성곽에서 역사를 만나다, 성순택 저, e퍼플 출판, 2019. → ‘여장’ 존재(‘높이가 낮은 담장을 쌓아 올렸다.’) 언급
- 김해 분산성 암벽서 ‘명문’ 발견 (경남일보, 2016.05.18.) http://www.g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9432 →조선 후기 양반들의 이름으로 확인 / 정현석 이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