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옥구향교 대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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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 대성전은 공자를 모신 사당이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에는 향교에 공자를 모신 사당을 두고, 유학을 장려했다. 나라에서 각 지방에 세운 학교 가운데 하나인 옥구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처음 세웠으며, 인조 24년(1646)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가운데 모시고, 동·서쪽으로 맹자 등 네 성인, 주자 등 중국 송나라 때 유학자 네 사람을 함께 모셨다. 우리나라의 유학자 열여덟 분의 위패도 모시고 있다. 향교에서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에 사당에 향불을 피워 올리고, 매년 봄가을에는 제사(석전대제)를 지냈다. 관청의 후원을 받아 향교의 선비들이 주관하여 치르던 이 제사는 공자의 뜻을 기리는 큰 행사이다. 이 향교는 경내에 단군 사당과 최치원 영전을 모시고 있는 점이 특색이다.

수정 국문

초고

향교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지방에 세워진 공립 교육기관으로 강학 및 제향의 역할을 담당했다. 대성전(大成殿)은 향교의 제향공간으로서 공자와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옥구향교는 1403년(태종 3) 이곡리에 건립되었다. 1484년(세종 15) 상평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6년(인조 24)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옥구향교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맞배지붕을 올렸다. 대성전 안에는 공자를 비롯해 유학에서 높이는 여러 성현과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옥구향교는 강학공간인 명륜당을 앞에 두고 제향공간인 대성전을 뒤에 두는 향교나 서원의 전형적인 전학후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옥구향교 경내에는 근래 들어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최치원이 독서했다는 자천대(紫泉臺)를 비롯해 최치원을 기리는 현충단·옥산서원·문창서원과 단군성묘·세종대왕숭모비가 옥구향교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 동쪽에 인접해 있다.

1차 수정

대성전은 향교에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역 학생들에게 유교를 가르쳤다.

옥구향교는 1403년 이곡리에 건립되었다. 1484년에 상평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4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옥구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옥구향교 경내에는 근래 들어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최치원이 독서했다는 자천대(紫泉臺)를 비롯해 최치원을 기리는 현충단, 옥산서원, 문창서원과 단군성묘, 세종대왕숭모비가 옥구향교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 동쪽에 인접해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을 제사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 목적으로 고려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이다. 향교의 시설 중 대성전에는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 옥구향교는 1403년(태종 3) 이곡리에 건립되었는데, 1484년(성종 15)에 상평리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46년(인조 24)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작지 않은 규모로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 균형 잡힌 모습을 갖추고 있다
    • 경내에는 근래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있다. 최치원이 독서했다는 자천대(紫泉臺)를 비롯해 최치원을 기리는 현충단, 옥산서원과 문창서원, 단군에게 제사 지내는 단군묘, 세종대왕숭모비와 비각 등이 남쪽과 서쪽, 동쪽에 인접해 있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대성전은 향교에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 대성전은 문묘와 향교에서 공자와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 수정이유: 원래 구절을 기계적으로 따른다면 대성전은 향교에만 있는 것으로 오인될 소지가 있음. 또 대성전의 주인은 엄연히 공자이므로 유교 성현들이라고 통칭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
    • 옥구향교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 향교에서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에게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사를 지낸다.
      • 수정이유: 봄과 가을의 제사는 옥구향교에 한정해서 서술할 내용이 아니며,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는 짧은 안내문에서 거듭 강조될 필요가 없을 듯함.
    • 옥구향교 경내에는 근래 들어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최치원이… → 옥구향교 경내에는 근래 들어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또 최치원이…
      • 수정이유: 이 안내문에 의하면 자천대, 현충단 옥산서원 등이 ‘근래 들어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로 이해되는데,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여 새로 서술할 필요 있음.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옥구향교는 1403년 이곡리에 건립되었다. 1484년에 상평리로 옮겼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4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2차 수정

대성전은 향교에서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공간이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 설립된 국립교육기관으로,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현들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역 학생들에게 유교를 가르쳤다.

옥구향교는 1403년 이곡리에 건립되었다가, 1484년에 상평리로 옮겼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46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옥구향교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 균형 잡힌 모습을 갖추고 있다.

옥구향교 경내에는 근래 새로 짓거나 옮겨온 여러 시설이 함께 배치되어 있다. 최치원이 독서했다는 자천대(紫泉臺)를 비롯해 최치원을 기리는 현충단, 옥산서원, 문창서원, 단군성묘, 세종대왕숭모비와 비각 등이 옥구향교를 중심으로 남쪽과 서쪽, 동쪽에 인접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