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중

나씨 삼강문

HeritageWiki
이슬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11월 12일 (목) 14:02 판 (새 문서: {{진행중}} {{문화유산정보 |사진=나씨삼강문.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600910000 나씨 삼강문], 국가문...)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이동: 둘러보기, 검색


나씨 삼강문
나씨 삼강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나씨 삼강문
한자 羅氏 三綱門
주소 전남 나주시 금남동 14-5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91호
지정(등록)일 1984년 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사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나씨 삼강문,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삼강문은 충신, 효자, 열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旌閭)*이다. 나씨 삼강문은 나주 나씨 나사침과 그의 아들, 며느리, 딸, 손자, 손자며느리, 손녀에 이르기까지 나주 나씨 가문의 충신, 효자, 열녀 여덟 분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문이다. 이 삼강문은 1947년 도로를 내면서 원래의 자리에서 약간 뒤로 옮겼으며, 1974년에 고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와 똑같은 삼강문이 반남면 대안리에도 있다.

나사침(1526∼1596)은 16세 때에 어머니가 병으로 위급해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봉양하여 위기를 넘기고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은 1617년 광해군 때에 편찬한 『동국신송삼강행실도』에 수록되어 있다. 그의 손자 득소(1607∼?)는 아버지 덕현이 사망하자 묘소에서 삼년상을 치렀다. 이 효성이 알려져 인조 때에 정려가 내려졌다.

나사침의 큰아들 덕명(1551∼1610)과 여섯째 아들 덕헌(1573~1640)은 기축옥사(己丑獄事)*에 연루되어 유배되었다가, 임진왜란 때에 의병을 일으키고 공을 세워 충신 정려가 내려졌다.

나사침의 넷째 아들 덕현의 처 하동 정씨와 나사침의 딸 충의위* 윤항의 처는 정유재란 때에 일본군에게 쫓기자 강물에 투신하여 순절하였고, 나사침의 둘째 아들 덕준의 딸 김집의 처는 일본군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선조 때에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또한 나사침의 손자 수소의 처 언양 김씨는 정묘호란 때에 친가가 있는 안주성에 피신해 있다가 성이 함락되자 분신자살하였다. 인조 때에 열녀 정려가 내려졌다.


  • 정려(旌閭):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그 동네에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던 일
  • 기축옥사(己丑獄事): 조선 선조 22년(1589)에 정여립(鄭汝立)의 모반을 계기로 일어난 옥사
  • 충의위(忠義衛): 조선 시대 중앙군으로 오위의 충좌위에 소속되었던 양반 특수 병종

영문

영문 해설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