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상산관
상주 상산관 Sangsangwan Guesthouse, Sa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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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상주 상산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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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Sangsangwan Guesthouse, Sangju |
한자 | 尙州 商山館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 (만산동) 임란북천전적지내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
지정(등록)일 | 1982년 2월 2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궁궐·관아/관아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상주 상산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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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상주 상산관은 조선 시대에 각 지역으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객사이다.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온 사신이 머물렀다. 현존하는 남부지방 최대 규모의 객사로 조선 후기 지방 관청 및 객사의 구성과 운영 상황을 살필 중요한 자료이다.
고려 충숙왕 15년(1328)에 목사 김영후가 고치고 조선 중종 21년(1526) 목사 윤탕이 새로 지었다.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을 선조 39년(1606)에 다시 지었고, 현종 7년(1666)에 고쳤다. 근대에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었으나 1940년에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 교실로 사용하였고, 1991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과 서익헌이 붙어 있다. 본관은 앞면 3칸, 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익헌은 앞면 7칸, 옆면 3칸으로 본관 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에도 처마가 뻗은 팔작지붕이다. 서익헌은 앞면 4칸, 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 쪽은 맞배지붕이고, 서쪽은 팔작지붕이다.
영문
Sangsangwan Guesthouse, Sangju Guesthouses, called gaeksa in Korean, were built nearby local government offices during the Goryeo (918-1392) and Joseon (1392-1910) periods. The guesthouse includes a shrine in the center to hold a wooden tablet symbolizing the king and two rooms to either side which were used as temporary lodging facilities for officials visiting from other regions. The wooden tablet enshrined in each local guesthouse exhibited the king’s sovereignty across the country. To acknowledge this sovereignty, the local magistrate and other officials regularly performed a ceremony in which they prostrated themselves toward the royal capital.
This guesthouse is presumed to have been established during the Goryeo period. Sangsan is the old name of the Sangju area. The guesthouse was repaired in 1328 and rebuilt in 1526. I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rebuilt in 1606, and repaired in 1666. The building was originally located on the spot of today’s Dongseong-dong Police Station. In 1940, it was moved to Sangju Girl’s Middle School and used as a classroom, until was moved to its current location in 1991.
The lodging sections on both sides consist of a wooden-floored hall and underfloor-heated rooms adjoining the shrine section in the center of the building. The shrine section features a simple gable roof, in contrast to the lodging sections which have a hip-and-gable roof. It is the largest guesthouse in the south of the Korean peninsula.
영문 해설 내용
객사는 고려와 조선시대에 고을 관아에 설치했다. 객사는 가운데에 왕의 전패를 모신 정당이 있고 좌우 양쪽에 숙소로 사용되던 익실이 있다. 객사에 모셔진 전패는 왕의 통치권을 상징하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권을 바탕으로 고을 수령과 관리들은 궁궐을 향해 절하는 망궐례를 행했다.
상주 지역의 객사는 고려시대에 처음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상산'은 상주 지역의 옛 이름이다. 1328년에 보수하였다가 1526년에 새로 지었고, 임진왜란 때 없어진 것을 1606년에 다시 지었으며, 1666년에 보수하였다. 현재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에 있던 것을 1940년에 상주여자중학교로 옮겨 짓고 학교 교실로 사용했으며, 1991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정당을 중심으로 양옆에 붙어있는 익사는 각각 정당과 가까운 쪽에 온돌방을 두고 나머지 공간에 대청을 두었다. 건물에는 맞배지붕을 올렸는데, 양쪽 끝은 팔작지붕으로 다르게 처리하였다. 현재 한반도 남부 지방에 남아 있는 관아 건물 중 최대 규모이다.
참고자료
-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1570000&pageNo=1_1_1_1 -> 조선시대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사를 지내며 중앙에서 파견된 사신이 머무르던 상주목의 객사이다. 고려시대에 지어진 건물로 조선 중종 21년(1526)에 화재를 입어 고쳐지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또다시 불타 선조 39년(1606)에 다시 세웠다. 원래의 위치는 지금의 동성동 상주경찰서 자리였으나 1940년에 옮겨져 상주여자중학교의 교실로 사용되었다. 그 후 다시 만산동으로 옮겨졌다. 가운데에 본관을 두고 양쪽에 동익헌·서익헌이 붙어 있다. 본관은 앞면 3칸·옆면 3칸이고, 지붕은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동익헌은 앞면 7칸·옆면 3칸으로 본관쪽 지붕은 본관과 같은 맞배지붕이고 동쪽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서익헌은 앞면 4칸·옆면 3칸으로 동익헌과 같이 본관쪽은 맞배지붕이고, 서쪽은 팔작지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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