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우복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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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우복 종택
Ubok Head House, Sangju
상주 우복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우복 종택
영문명칭 Ubok Head House, Sangju
한자 尙州 愚伏 宗宅
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채릉산로 799-46(우산리)
지정(등록) 종목 국가민속문화재 제296호
지정(등록)일 2018년 11월 1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8동
웹사이트 상주 우복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2019 국문

우복 종택은 우복 정경세의 5세손인 정주원이 1750년대에 지은 집이다. 정경세는 조선 시대에 이름을 떨친 선비이다. 조선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인 존애원을 설립하는 데 힘쓰기도 하였다. 영조가 그의 덕을 기려 이곳 땅을 하사하였다.

우복 종택은 생활 공간 외에도 대산루(對山樓), 계정(溪亭) 도존당(道存堂)으로 이루어져 있다.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건너편에 사랑채, 안채, 행랑채가 ‘ㄷ’자를 이루며 바라보고 있다. 사랑채는 높게 지어져 바깥 경관을 바라볼 수 있어서 산수헌(山水軒)이라고 한다.

2020 국문

상주 우복 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예학의 대가인 정경세(1563~1633)가 생전에 지은 집이다. 우복은 정경세의 호(號)이고 종택은 한 문중에서 맏아들이 대대로 가족과 함께 살아온 집을 뜻한다. 현무봉과 이안천이 만나는 배산임수의 명당을 차지하고 있다. 우복 종택은 계정, 대산루를 비롯해 정경세가 세상을 떠난 뒤에 지은 진주 정씨 종갓집, 도존당 등을 모두 포함한다. 상주 우복 종택은 영남 지역의 종갓집 특성과 함께 누정과 별당, 서원 등 다양한 기능의 건물이 시기를 달리하며 갖춘 경우로 조선 후기 종갓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건물은 종갓집, 대산루, 계정, 도존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종갓집은 영조가 정경세의 덕을 기려 하사한 터에 그의 5대손 정주원이 1750년대에 건립한 살림집이다. 대문채와 일 자 모양인 사랑채가 ‘ㄷ’자 모양인 안채와 맞붙어 ‘ㅁ’자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종갓집 동쪽에 있는 대산루는 정경세의 6대손 정종로가 새로 지은 것으로 공부와 휴식 및 손님을 맞이하는 용도의 다락집 2동이 ‘ㅏ’자 모양으로 결합된 독특한 형태이다. 종갓집 양측으로는 정경세와 정종로를 모시는 불천위 사당* 2개가 있다. 대산루 앞 이안천 변에 있는 계정은 1603년에 독서를 위해 지은 2칸의 작은 초가 정자로 청간정이라고도 부른다. 대산루 뒤편에 있는 도존당과 고직사는 정경세를 기리기 위해 정종로가 세운 서당으로 서원철폐 때 헐렸던 것을 다시 지은 것이다.


  • 불천위 사당: 국가에 큰 공을 세웠거나 덕이 높은 사람에게 그 신위를 영구히 사당에 모실 것을, 나라 혹은 지역 유림에서 허락해 제사를 지내는 집.

영문

Ubok Head House, Sangju

This is the head house of the family of Jeong Gyeong-se (1563-1633, pen name: Ubok),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 head house is a residence passed down among the male successors of a family lineage.

Born in Yul-ri Village of Sangju, Jeong Gyeong-se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in 1586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He mobilized a local civilian arm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of 1592 and, later in 1598, was promoted to governor of Gyeongsang-do Province, where he skillfully mitigated the devastation of public welfare after the war. In his home village, he also founded the first private medical institution in Korean history, called Jonaewon.

Around the year 1600, Jeong built a pavilion in this village (Usan-ri) where he devoted himself to his studies. Later, his descendant Jeong Ju-won (1686-1756) moved here from Yuil-ri and built this head house next to the pavilion. After the head house was completed, the pavilion was used as a detached quarters where guests were received.

  • skillfully mitigated the devastation of public welfare after the war
    • "devastation of public welfare" 좀 어색하네요...
    • --> skillfully dealt with the post-war devastation / skillfully led the post-war recovery of the region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정경세(1563-1633, 호: 우복)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집안의 종가가 대대로 사는 집이다.

정경세는 상주 율리 출신으로 1586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일으켰고, 1598년에는 경상도 관찰사가 되어,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생과 인심을 잘 다스렸다. 특히 한국 최초의 사설 의료기관인 존애원을 율리에 설립하기도 했다.

정경세는 1600년경 이 마을에 정자를 짓고 학문을 닦는 곳으로 사용하였다. 이후 정경세의 후손인 정주원(1686-1756)이 율리에서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정경세가 지은 정자 옆에 이 집을 지었다. 종택이 지어진 후, 정경세가 지었던 정자는 종택의 별당이자 손님을 대접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