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흥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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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
Heungguksa Temple
흥국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흥국사
영문명칭 Heungguksa Temple
한자 興國寺
주소 전라남도 여수시 중흥동 흥국사길 160
지정(등록) 종목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38호
지정(등록)일 1984년 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
웹사이트 흥국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종합안내판

영취산 중턱에 자리한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에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이 세운 절이다.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흥국(興國)’이라 지었는데, 이는 나라가 안정되고 기운차게 일어나 매우 번성하기를 기원하며 호국을 우선으로 하는 사찰이 되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흥국사는 몽골군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가, 조선 명종 15년(1560)에 중창하였다. 그러다가 임진왜란 때에 모두 타 버려 인조 2년(1624)에 계특대사가 다시 지었다. 그 후에는 꾸준히 사세를 확장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호국 불교의 성지라 부르는 흥국사는 임진왜란 때에 중들이 조직한 수군 의병의 근거지였다. 승병들은 자운과 옥형 두 승장의 지휘 하에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바다를 지켰으며 전쟁 후에도 지역의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국가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명맥을 이어나갔다.

경내에는 보물 10점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와 임진왜란 당시에 승병을 훈련하던 자리가 남아 있다.

여수의 불교문화

흥국사는 고려시대 불교 개혁 운동인 정혜 결사(淨慧結社)의 중심 사찰이자 우리나라 호국 불교의 성지이다.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 1158~1210)은 당시 불교계의 타락과 모순을 비판하고, 오직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아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한 ‘정혜 결사 운동’을 주도하였다. 그리고 ‘나라가 흥하면 절이 흥하고,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한다.’라는 이념을 담아 흥국사를 창건하여, 국가와 승가가 공동의 운명체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흥국사의 창건 이념은 훗날 임진왜란 때에 흥국사의 승려들이 의병을 조직하고, 흥국사가 수군의 근거지 역할을 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들은 의승군(義僧軍)을 모아, 스스로 군량을 조달해 가며 이 지역을 관할하던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다. 전란 이후에도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기도처 역할을 하며 호국 불교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여수에는 흥국사 외에도 이름난 관음 기도처인 향일암이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와 장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석천사가 있다.

영문

Heungguksa Temple

Heungguksa Temple, located on the slope of Yeongchwisan Mountain, was established in 1195 by State Preceptor Bojo (i.e. Jinul, 1158-1210), an eminent Buddhist monk of the Goryeo period (918-1392). The name Heungguksa means “Temple of a Flourishing Country” and implies that when a country is prosperous, its Buddhist temples flourish as well. This conveys State Preceptor Bojo’s wish for the security and prosperity of the Goryeo kingdom, as well as his intention to make the defense of the kingdom a priority of the temple.

The temple fell into ruin due to invasions by the Mongols and Japanese in the mid- and late Goryeo period. It was rebuilt in 1560 but was destroy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It was rebuilt again in 1624 by the monk Gyeteuk. After that, the temple was gradually expanded until it reached its present scale.

Heungguksa is considered a sacred place of “state-protecting Buddhism,” a feature of Korean Buddhism in which monks actively support the defense of the country.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the temple served as a base for a civilian navy. Monk-soldiers, led by the monks Jaun and Okhyeong, helped defend the coast together with Admiral Yi Sun-sin (1545-1598). After the war, the temple’s monks actively participated in various government campaigns to settle the unrest of the people.

Inside the temple complex, there are many cultural heritages, including ten state-designated treasures, and training grounds for the monk-soldiers us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Buddhist Culture of Yeosu

Heungguksa Temple is considered the center of the Buddhist reformation movement and a sacred place of “state-protecting Buddhism.”

The founder of the temple, State Preceptor Bojo (i.e. Jinul, 1158-1210), criticized the corruption and inconsistency of the Buddhist circles of his time and sought to reform Korean Buddhism through meditative consciousness and wisdom. He emphasized how the country and monks are bound together by common destiny. This can be seen in the name Heungguksa, meaning “Temple of a Flourishing Country,” which implies that when a country is prosperous, its Buddhist temples flourish as well.

This philosophy re-emerged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Upon the outbreak of the invasions, monks used the temple as a base to gather civilian troops and procure provisions. The monk-soldiers fought against the Japanese together with Admiral Yi Sun-sin (1545-1598), who was in charge of the navy in this region. After the war, Heunguksa Temple became a sacred place of state-protecting Buddhist where people come to pray for the stability of the country.

Apart from Heungguksa, Yeosu is also home to Hyangiram Hermitage, a well-known prayer site, as well as Chungminsa Shrine and Seokcheonsa Temple, both established in honor of Admiral Yi Sun-sin.

영문 해설 내용

종합안내판

영취산 중턱에 자리한 흥국사는 1195년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나라가 흥하면 절도 흥한다’는 의미로 ‘흥국’이라 지었다. 이는 나라의 안정과 융성을 기원하며, 호국을 우선으로 하는 사찰이 되겠다는 염원을 담은 것이다.

흥국사는 고려 중기와 고려 말 몽골군과 왜구의 침입으로 폐허가 되었다. 1560년에 다시 지었으며, 임진왜란으로 또 전소되어 1624년 계특대사가 다시 지었다. 그 후에도 꾸준히 사세를 확장하였다.

흥국사는 호국불교의 성지라고 일컬어진다. 임진왜란 때에는 승려들이 조직한 수군 의병의 근거지였다. 승병들은 자운과 옥형 두 승장의 지휘 하에 이순신(1545-1598)과 함께 바다를 지켰으며, 전쟁 후에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국가사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경내에는 보물 10점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와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이 훈련하던 자리가 남아 있다.

여수의 불교문화

흥국사는 고려시대 불교 개혁운동의 중심이자 한국 호국불교의 성지로 여겨진다.

고려의 승려 보조국사 지눌(1158-1210)은 당시 불교계의 타락과 모순을 비판하고, 오직 선정(禪定)과 지혜를 함께 닦아 불교계를 개혁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나라가 흥하면 절이 흥하고, 절이 흥하면 나라도 흥한다’는 이념을 담아 흥국사를 창건함으로써, 국가와 승가가 공동의 운명체임을 강조하였다.

이러한 흥국사의 창건 이념은 훗날 임진왜란 때 흥국사의 승려들이 의병을 조직하고 수군의 근거지 역할을 한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려들은 의병을 일으키고, 스스로 군량을 조달해 가며 당시 이 지역을 관할했던 이순신(1545-1598)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웠다. 또한 전란 이후로도 나라의 안정을 기원하는 기도처로서의 역할을 하며 호국불교의 성지로 자리 잡았다.

여수에는 흥국사 외에도 이름난 기도처인 향일암이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사당인 충민사와 장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은 사찰인 석천사가 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