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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거 종법사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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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거 종법사 생가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원불교, 대산 종법사 탄생 100주년 맞아 생가 일반에 개방한다, 세계일보 2014.4.9.기사.
대표명칭 김대거 종법사 생가
한자 金大擧 宗法師 生家
주소 전북 진안군 성수면 좌포리 812-1
지정(등록) 종목 향토문화유산 제19호



해설문

국문

원불교의 대산(大山) 김대거(金大擧, 1914~1998) 종사의 생가이다. 대산 종사는 부친 김인오(金仁悟)와 모친 안경신(安敬信)의 장남으로 태어나, 11세에 진안 만덕산 만덕암에서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 1891~1943) 대종사와 인연을 맺었다. 16세에 출가하여 소태산 대종사를 보필하였으며, 정산(鼎山) 송규(宋奎, 1900~1962) 종사의 뒤를 이어 3대 종법사로 33년간 원불교 교단을 이끌었다.

대산 종사가 원불교 익산총부로 이사하자 아우 대설(大說)이 부모를 모시고 이 집에서 살았다. 생가 본채는 5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인데, 왼쪽 한 칸은 부엌이고 나머지 네 칸은 방이다. 방 앞에는 넓은 툇마루가 있다. 2013년 대산종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원불교 100년 기념성업회에서 본채를 보수하였다.

생가 아래채에는 대산 종사의 할머니 노덕송옥과 고모가 살았는데, 노덕송옥이 1930년 마령교당 교무를 초청하여 여기에서 법회를 보기 시작한 것을 계기로 1938년에 좌포교당이 설립되었다.

옛 사랑채는 철거하고 그 자리에 건물을 지어 탄생가 관리사무소로 사용하고 있으며, 행랑채는 터만 남아 있다. 뒤뜰에는 대산 종사와 가족들이 기도를 올렸던 거북바위가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원불교 교단을 이끄는 최고 지도자로 활동한 김대거(1914-1998)의 생가이다.

김대거는 11세 때 원불교 교조인 박중빈(1891-1943)을 만나 16세에 출가하였으며, 3대 종법사가 되어 1962년부터 1994년까지 교단을 이끌었다.

원래 본채와 아래채, 사랑채, 행랑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본채만 남아 있다.

본채는 왼쪽에 부엌이 있고 나머지는 방으로 되어 있으며, 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이곳은 2000년부터 원불교의 성지로 관리되기 시작해, 2013년부터 김대거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본채의 보수를 실시해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뒤뜰에는 김대거와 그의 가족들이 기도를 올렸다고 하는 거북바위가 남아 있다.


  • 이 집은 1904년에 지어졌으며(집의 건축 연대 확인 필요 ; 원불교 홈페이지 – 1904년 / 기사 – 1915년), 김대거가 출가한 후에는 김대거의 동생 김대설이 이 집에서 부모를 모시고 살았다. (김대설이 이 집에 언제까지 살았던 것인지 확인 어려움.)

참고 자료

  • 성보 제15호 대산 종사 탄생가, 원불교 홈페이지 http://guide.won.or.kr/pages/youmul/sungbo/1 -> 대산 종사는 원기 14년(1929)에 출가하여 익산 중앙총부에서 생활하다가 원기 18년(1933)에 의타원 이영훈과 결혼한 후 원기 21년(1936)에 사가를 정리하고 총부 구내로 이사하였습니다. 이후 아우인 황산 김대설이 부모를 모시고 살다가 원기 96년(2011) 그의 부인 보타원 양보훈이 탄생가와 대지(1,144m2)를 교단에 희사하였습니다.
  • 제 모습 갖춰가는 대산종사 탄생가, 원불교신문, 2013.6.28. http://www.wo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7136 -> 상량문에 1915년(歲乙卯年五月二十日)에 지어진 한옥으로 기록된 탄생가는 봉황산이 올려다 보이는 평탄한 터에 안채를 중심으로 아랫채, 문간채, 행랑채 등이 정연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안채를 제외한 다른 부속건물들은 소멸되고 없다.
  • 원불교, 대산 종법사 탄생 100주년 맞아 생가 일반에 개방한다, 세계일보, 2014.4.9 https://www.segye.com/newsView/20140409004982 -> 대산 탄생가는 2000년 원불교 성적지(聖跡地) 제23호로 지정 관리됐으며, 2013년 원불교문화재관리규정이 개정되면서 원불교 성보(聖寶) 제15호로 지정됐다. 이를 계기로 원불교100년기념성업회에서는 2013년 본채 보수를 시작으로 중수를 완성했다. / 대산 종사는 인류를 한 가족으로 품어야한다는 화동의 진리를 역설하고 실천하며 종교화합 운동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다. 종법사 시절 전북 익산 원불교 묘원 곁의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면서 개신교의 강원룡 목사 등과 교류해 ‘비닐하우스 성자’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대산은 해방직후 백범 김구 선생과 깊이 교류하며 남북 상생의 해법을 모색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