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장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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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장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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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도장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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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道長閣 |
주소 | 전북 진안군 마령면 계서리 344-1 |
지정(등록) 종목 | 향토문화유산 제1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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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도장각은 원래 수당(修堂) 정종엽(鄭鍾燁, 1885~1940) 선생이 근방의 학동들을 모아 글을 가르치던 강당으로, 1932년 건립되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앞쪽은 툇마루로 이어져 있다. 정면에는 ‘도장각’이라 쓰인 현판이 걸려 있고, 옆면 벽에는 수당 선생의 도장각기(道長閣記)와 정동휘(鄭東暉)의 내산사기(萊山祠記)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다.
현재 도장각은 내산사의 부속 건물 중 하나이다. 내산사는 일제강점기 유학자이자 애국지사인 수당 선생의 공적을 기리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1957년 유림회에서 세운 사당이다. 동래 정씨 문중 선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으며, 2003년 현충 시설로 지정되어 수당 선생의 직계 손자인 정상렴 씨가 관리하고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건물은 정종엽(1885-1940)이 노년에 후학들에게 글을 가르치는 강당으로 사용했던 곳으로, 1932년에 지어졌다. 본래 동래 정씨 선산에 있는 재각이었다고 한다.
정종엽은 항일운동 의병장으로 활약한 이석용(1878~1914)에게 군자금을 대는 등 항일운동에 참여했으며, 1913년 이석용이 체포된 후 일제를 피해 여러 차례 개명하면서 거처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말년에 이곳에 자리 잡고 후진을 양성했으며, 2003년 건국 포장을 받았다.
건물은 현판이 걸린 중앙에 출입문을 내었고, 건물 앞쪽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현재 정종엽을 추모하기 위해 1957년에 세운 사당인 내산사 경내에 자리하고 있다.
참고 자료
- 南道 정자기행(5078)-진안 도장각(道長閣) http://www.hankukmail.com/newshome/print_paper.php?number=36512 -> 이미지 출처
- 정종엽, 디지털진안문화대전 http://jinan.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jinan -> 1911년 전북 진안에서 이석용에게 군자금을 지원하였으며, 1912년 이석용이 의병 활동의 재개를 위해 조직한 임자동 밀맹단(壬子冬 密盟團)에 가입하여 항일 의병 투쟁에 참여하였다. 또한 이석용의 종군 기록인 『창의일기』가 일본 경찰에게 빼앗길 우려가 있자 그 책을 자기 집에 보관하여 후세에 전하도록 하였다. 그 뒤 이석용이 일경에 붙잡히자 정종엽은 일경을 피하여 수시로 개명하고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어려운 삶을 살았다. 말년에는 진안군 마령면 계남리 선산 재각인 도장각(道藏閣)에서 후진을 양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