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성당 어은공소
진안성당 어은공소 Eoeun Chapel of Jinan Catholic Churc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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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안성당 어은공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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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Eoeun Chapel of Jinan Catholic Church |
한자 | 鎭安聖堂 魚隱公所 |
주소 | 전북 진안군 진안읍 어은동길 23 (죽산리) |
지정(등록) 종목 | 국가등록문화재 제28호 |
지정(등록)일 | 2002년 5월 31일 |
분류 | 등록문화재/기타/종교시설 |
시대 | 일제강점기 |
수량/면적 | 1동 연면적 132.77㎡ |
웹사이트 | 진안성당 어은공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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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공소는 본당보다 작은 교회로, 천주교에서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소나 그 구역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은공소는 진안 지역의 첫 천주교 본당이다. 이 건물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온 천주교인들이 어은동 마을에 신앙촌을 형성하면서 1888년에 전주 본당(현 전동성당)에서 관할하는 공소가 되었다. 이후 신도가 늘어나자 1900년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몇 차례 공소를 확장하였다. 1909년에는 돌 너와로 지붕을 얹은 정면 6칸, 측면 4칸의 아(亞) 자 모양 한옥 건물로 성당을 새로 준공하였다. 내부는 줄기둥이 주 공간과 복도를 나누는 바실리카 양식*으로 되어 있다. 당시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분별이 있어야 한다는 유교 관습에 따라 중앙 기둥 사이의 칸막이로 남자와 여자가 앉는 자리를 구분하고 출입구를 따로 내었다. 서양 성당의 건축 양식을 한옥 건축 양식과 절충한 이 건물은 우리나라 천주교회사 연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 바실리카 양식: 초기 기독교 건축의 평면 양식. 교회 중앙의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신도들이 앉는 자리가 배치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공소란 천주교 신자들을 위한 작은 예배소이다. 평상시에는 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정기적으로 신부가 방문했을 때 미사를 집전한다.
어은 공소는 진안 지역에 세워진 첫 천주교 본당이다. 1888년 전주 본당의 공소로 시작해 1900년 본당으로 승격되었으며, 1909년 현재의 성당 건물을 새로 지었다.
성당 내부는 중앙의 통로를 중심으로 양쪽에 좌석을 두었다. 당시 유교 관습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출입구를 따로 내었고, 내부에도 공간을 구분하는 중앙 기둥 사이에 칸막이를 두어 남녀의 자리를 구분하였다.
오른쪽 끝에 있는 제대 뒷벽에는 목제 촛대가 있고, 그 뒤로 목조로 된 감실이 있어 초기 성당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어은동 마을은 1866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 들어온 사람들이 형성한 교우촌이다. 이곳은 1922년 한들 공소를 신축해 본당을 이전하면서 공소가 되었다. 1947년 본당으로 다시 승격되기도 했지만 한국 전쟁이 일어나면서 1951년 폐쇄되었고, 1952년 진안 본당이 세워지면서 공소로 남게 되었다.
지금은 매월 첫 주 목요일에 미사를 올린다.
참고 자료
- 세월의 흔적, 근대문화 역사유산, 지역N문화 https://ncms.nculture.org/legacy/story/2868 -> 어은공소는 정면이 긴 한옥이다. 내부는 오른쪽 끝으로 제대(祭臺)가 설치되어 있고, 가운데는 신도석인데, 서양의 바실리카 성당과 같은 공간 구조를 보인다. ...... 바실리카 성당 내부는 세 부분으로 나뉘지만, 어은 공소는 남·여 신도석을 구분하는 나무기둥이 있어 네 부분으로 구분되는 점이 특이하다. / 어은공소는 원래 팔작지붕에 너와를 얹었다. 지붕의 무게 때문에 1967년 가벼운 함석으로 바뀌었다가 2002년 등록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면서 함석을 청석으로 교체했다. / 1909년 어은동에 성당을 지은 김양홍 신부는 성당의 사랑채에 영신 학교라는 서양 근대 학문을 가르치는 학교를 열었다고 한다. 영신 학교는 현재 흔적을 찾을 수 없다.
- 전라북도 공식 블로그 https://blog.naver.com/jbgokr/220530769265 -> 매월 첫 주 목요일 오전 7시에 미사를 올린다.
- 전주교구 어은동 공소, good news 성지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holyplace&ctxtOrgNum=2855 - > 한들 공소에 본당 자리를 넘겨주고 공소로 편입된 가장 큰 이유는 어은동이 산속 깊은 골짜기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물고기가 숨은 형상이라고 해서 ‘어은동’이라고 불렀는데 물고기는 로마 교회 박해 시대에 신자들이 서로를 알아보던 암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