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종로 정충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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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종로 정충비각
대표명칭 손종로 정충비각
한자 孫宗老 旌忠碑閣
주소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양동마을길 121-29
지정(등록) 종목 문화재자료 제261호
지정(등록)일 1992년 7월 18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0
수량/면적 2동
웹사이트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해설문

국문

이 비각은 손종로(孫宗老, 1598~1636)와 그의 노비 억부(億夫)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정조 7년(1783)에 세웠다. 인조 때 남포현감을 지낸 손종로는 인조 14년(1636)에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억부와 같이 전쟁에 나아가 경기도 이천의 쌍령 전투에서 전사했는데 시체를 찾지 못하여 옷가지만으로 장사를 지냈다고 한다. 왼쪽의 정충비각(旌忠碑閣)은 손종로를 기리는 것이고, 오른쪽의 충노각(忠奴閣)은 노비 억부를 기리는 것이다. 비문은 우승지 이정규(李鼎揆, 1735~1810)가 짓고 정충필(鄭忠弼, 1725~1789)이 글씨를 썼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각은 손종로(1598~1636)와 그의 노비 억부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1783년에 세워졌다. 손종로는 1636에 청나라가 다시 침입하자 억부와 같이 전쟁에 나아가 전투에서 전사했으며 시체도 찾지 못하여 옷가지만으로 장사를 지냈다. 왼쪽의 정충비각은 손종로를 기리는 것이고, 오른쪽의 충노각은 노비 억부를 기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