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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안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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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kichukova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27일 (일) 00:38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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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래정
Gwiraejeong Pavilion
귀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귀래정
영문명칭 Gwiraejeong Pavilion
한자 歸來亭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옹정골길 19-8 (정상동)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7호
지정(등록)일 1985년 8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귀래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귀래정은 조선 중기 때 문신이었던 이굉(李浤, 1441~1516)이 벼슬에서 물러난 후 고향에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정자의 이름은 중국 시인 도연명(陶淵明)의 「귀거래사(歸去來辭)」에서 따왔다.

이굉은 14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내다가 귀양을 가기도 했다. 1513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고향에 귀래정을 짓고 만년을 보냈다.

귀래정은 앞면 2칸, 옆면 2칸의 ‘丁’자형 건물로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중앙의 대청과 양옆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 주위를 제외한 다른 곳의 기둥은 각이 있고 창문에 쐐기 기둥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자는 북동향으로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다. 원래는 강변에 더 가까이 있어서 낙동강과 안동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았으나, 정자 앞에 도로를 넓히면서 뒤로 조금 물러나게 되었다.

영문

Gwiraejeong Pavilion

  • Gwiraejeong means “a pavilion to leave a government position and return home.”


Gwiraejeong Pavilion is a pavilion built in 1513 by Yi Goeng (1441-1516),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after he retired and returned to his home town. The name Gwiraejeong bears the meaning of “a pavilion to leave a government position and return home.”

Yi Goeng is the second son of Yi Jeung, the first person from the Goseong Yi Clan to settle in Andong. Yi Goeng passed the state examination to become a civil official in 148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the following years but during the Literati Purge of 1504, he went into exile in Yeonghae (present-day Yeongdeok) until 1506. After this, he again lived as a government official, resigned from his official duties in 1513, and spent his latter years in his hometown.

Facing northeast, this T-shaped pavilion looks toward Nakdonggang River, and it consists of a wooden-floored hall at the center and an underfloor-heated room to each side. Originally, it was nearer the beach, panoramically overlooking Nakdonggang River and Andong City, but in 2006, the road in front of the pavilion was expanded, so it was moved slightly behind (backwards?).

영문 해설 내용

귀래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이굉(1441-1516)이 1513년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에 돌아와 지은 정자이다. 귀래정이라는 이름은 '벼슬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굉은 고성이씨의 안동 입향조인 이증(1419-1480)의 둘째 아들이다. 이굉은 1480년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지냈으며, 1504년 사화 때 영해(지금의 영덕)로 유배를 갔다가 1506년에 풀려났다. 이후 다시 관직생활을 하다가 1513년 사직하고 고향에서 만년을 보냈다.

이 丁자형의 정자는 북동향으로 낙동강을 바라보고 있으며, 중앙의 대청과 양옆의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강변에 더 가까이 있어서 낙동강과 안동시를 한눈에 내려다보았으나, 2006년 정자 앞의 도로를 넓히면서 뒤로 약간 옮겨지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