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계림
경주 계림 Gyerim Forest, Gyeongju |
|
대표명칭 | 경주 계림 |
---|---|
영문명칭 | Gyerim Forest, Gyeongju |
한자 | 慶州 鷄林 |
주소 | 경북 경주시 교동 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9호 |
지정(등록)일 | 1963년 1월 2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구비전승지/구비전승지 |
시대 | 신라 |
수량/면적 | 23,023㎡ |
웹사이트 | 경주 계림,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계림은 신라의 옛 나라 이름 가운데 하나이자 신라 김씨(金氏)의 시조인 알지(閼智)의 탄강 설화가 전해오는 숲 이름이다. 면적은 7,300㎡로 원래 시림(始林) 혹은 구림(鳩林)이라 하였으나, 알지가 태어난 뒤로 닭이 울어 알지가 태어난 것을 알렸다고 해서 닭 계(雞)자를 써 계림이라 불렀다. 김알지는 비록 자신이 왕이 되지는 못했지만 신라에서 가장 많은 수의 왕을 배출한 신라 김씨 왕의 시조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金城) 서쪽 시림의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를 듣고, 날이 밝은 후 신하인 호공(瓠公)을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호공이 시림에 이르러 살펴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서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였다. 이에 왕이 사람을 시켜 궤짝을 가져와 열어 보았는데, 그 속에는 자태가 빼어난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거두어 길렀다.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많아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 『삼국유사』에는 알지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 우리말로 `아이(小兒)'를 뜻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왕은 알지를 태자로 삼았으나, 알지는 파사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그 후 알지의 7대 후손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미추왕이다. 이후 내물왕부터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리게 되었으며, 계림은 신성한 곳으로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조선 순조 3년(1803)에 세운 김알지 탄생에 대한 비(碑)가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