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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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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읍성
Gyeongjueupseong Walled Town
경주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경주읍성
영문명칭 Gyeongjueupseong Walled Town
한자 慶州邑城
주소 경북 경주시 북부동 1번지
지정(등록) 종목 사적 제96호
지정(등록)일 1963년 1월 21일
분류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지
시대 고려시대
수량/면적 45,496㎡
웹사이트 경주읍성,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읍성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행정 기능을 함께하는 성을 말한다.

경주읍성은 『동경통지(東京通志)』에 고려 현종 3년(1012)에 쌓았던 것을 우왕 4년(1378)에 고쳐 쌓았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 선조, 인조, 영조에 이르기까지 증․개축과 내․외부의 구조 변경이 있었음을 문헌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2016년 복원정비를 위한 발굴조사 과정에서 흙으로 처음 쌓은 성벽의 기초와 우왕 때 돌로 고쳐 쌓은 성벽의 기초가 확인되어 문헌에 기록된 사실이 증명되었다.

읍성 안에는 조선 태조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집경전(集慶殿)과 관아(官衙) 외에도 사방으로 향일문(向日門), 망미문(望美門), 징례문(徵禮門), 공신문(拱辰門)이 설치되었으며, 성벽 바깥으로 해자(垓子)*도 갖추고 있었다. 『문종실록(文宗實錄)』에 둘레 4,075척(약 1,904m), 높이 11척 6촌(약 5.4m) 등 비교적 정확한 구조와 규모가 설명되어 있다.

남문인 징례문 밖 봉황대 옆에 성덕대왕신종을 걸어 매일 시각을 알려 주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때에는 이장손(李長孫)이 발명한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처음으로 사용하여 왜군을 물리쳤던 곳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에 대부분 헐리고 동쪽성벽 90m 정도만 남아 있었는데, 2018년 동쪽 성벽과 향일문[동문] 일대를 복원, 정비하였다.


  • 어진(御眞) : 왕의 얼굴을 그린 그림. 초상화. 진용(眞容)·어영(御影) 등
  • 해자(垓子) :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 밖을 둘러 파서 못으로 만든 곳.


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