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이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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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이견대 Igyeondae Pavilion, Gy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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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경주 이견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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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Igyeondae Pavilion, Gyeongju |
한자 | 慶州 利見臺 |
주소 | 경북 경주시 감포읍 대본리 661번지 |
지정(등록) 종목 | 사적 제159호 |
지정(등록)일 | 1967년 8월 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구비전승지/구비전승지 |
시대 | 통일신라 |
수량/면적 | 4,197 |
웹사이트 | 경주 이견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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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이견대는 삼국통일을 이룩한 신라 문무왕의 수중릉(경주 문무대왕릉, 사적 제158호)이 바라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문무왕이 왜구를 진압하고자 감은사를 세웠으나 끝내 완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바다의 용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들 신문왕이 즉위하여 682년 감은사를 완성하고, 용이 드나들 수 있도록 법당 밑에 구멍을 뚫어 두었다. 후에 용이 언덕 위에 나타났다고 하여 이곳을 이견대라 하였다.
이듬해 5월에 감은사 앞바다에 작은 산이 떠내려 와서 신문왕이 이 산에 들어가 용을 만나 옥대(玉帶)를 받았다. 또 산 위에 난 대나무를 베어내 피리를 만들었다. 이 피리가 나라의 모든 근심과 걱정을 해결해 준다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이다. 옥대와 만파식적은 그 후 신라의 보물이 되었다.
이견대라는 이름은 주역(周易)에 있는 글귀인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에서 따온 말로 신문왕이 바다에 나타난 용을 보고 나서 나라에 큰 이익이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1970년 발굴조사로 이견대 건물 터를 확인하였고, 1979년 신라시대의 건축양식을 추정하여 이견정을 새로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