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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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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26일 (토) 05:1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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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풍정
광풍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광풍정
한자 光風亭
주소 경북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774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22호
지정(등록)일 1996년 12월 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수량/면적 1,928㎡
웹사이트 광풍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광풍정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1630년대에 지은 누각을, 1838년에 안동 지역의 유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새로 지었다. 장흥효는 김성일(金誠一, 1538~1592),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정구(鄭逑, 1543~1620) 등 당대의 대학자들에게서 수학하였고 후진 양성에 전념한 공로로 사후에 관직에 추증되었으며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모셔졌다.

광풍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크기의 건물로 북동쪽을 향해 있으며, 마루 공간을 넓혀 정자의 특징인 개방성을 강조하였다.

광풍정 뒤편에는 자연암석 위에 세워진 제월대(霽月臺)라는 누각이 있는데, 광풍정과 제월대는 서로 짝을 이룬다. 광풍과 제월은 ‘비 갠 뒤의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중국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이 쓴 「염계시서(濂溪詩序)」에 나온다. 황정견이 주돈이(朱敦頤)의 인품을 평하면서 ‘마음이 넓어서 자질구레한 데 거리끼지 않는 인품’이라는 의미로 한 말이다.

영문

Gwangpungjeong Pavilion

This pavilion was originally built in the 1630s by Jang Heung-hyo (1564-1633), a scholar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and a descendant of Andong Kim Clan. Jang was taught by eminent scholars at that time, such as Ryu Seong-ryong and Jeong Gu. Despite this elite education, he chose to teach young generation of students instead of serving in the government seeking power. For this, he was posthumously bestowed an official post and enshrined at Gyeonggwangseowon Confucian Academy in Andong. His works were later published and entitled A Literary Collection of Gyeongdang [Jang Heung-hyo].

This pavilion was reconstructed in 1838 by a group of local Confucian scholars in the Andong area. Behind this pavilion stands another one that makes these two a pair; The name of this pavilion is Gwangpung 光風, meaning “a brisk wind,” and the other one is Jewol 霽月, meaning “the moon after rain.” Together, these phrases are from a Chinese poem depicting the personality of Zhou Dunyi, a Chinese philosopher and a Neo-Confucian scholar.

  • 건립자에 대한 설명 먼저, 그 뒤에 건물에 대한 설명으로 순서를 변경했습니다.

영문 해설 내용

광풍정은 조선 중기 성리학자인 장흥효(張興孝, 1564~1633)가 1630년대에 지은 누각을 1838년에 안동 지역의 유림들이 현재의 모습으로 개축한 것이다.

장흥효는 김성일(金誠一, 1538~1592), 유성룡(柳成龍, 1542~1607), 정구(鄭逑, 1543~1620) 등 당대의 대학자들에게서 수학하였다. 그는 관직 진출을 단념하고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는데, 이러한 공로로 사후에 관직에 추증되었고 안동의 경광서원(鏡光書院)에 모셔졌다.

광풍정 뒤편에는 자연암석 위에 세워진 제월대(霽月臺)라는 누각이 있다. 광풍정과 제월대는 서로 짝을 이루는데, 이것은 중국 북송의 시인 황정견(黃庭堅)의 「염계시서(濂溪詩序)」에서 따온 것이다. 광풍과 제월은 각각 ‘맑은 바람’과 ‘비 갠 달빛’을 의미하며, 선비의 훌륭한 인품을 나타내는 말이다.

참고자료

  • 김낙진, 「敬堂 張興孝를 통해 본 퇴계학파의 心學」, 『한국인물사연구』 21, 한국인물사연구회, 2014.

→ 위의 자료를 통해 장흥효의 학맥 및 그들로부터 배운 바를 확인할 수 있다.

  • 『敬堂先生續集』, 卷2, 「光風亭重建上樑文(柳致明)」

→ 위의 자료를 통해 광풍정의 중건이 1838년(헌종 4) 4월에 완료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