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암금양강도지
갈암 금양강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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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갈암 금양강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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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葛菴 錦陽講道址 |
주소 | 경북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502번지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116호 |
지정(등록)일 | 1996년 12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당 |
수량/면적 | 2,126㎡ |
웹사이트 | 갈암 금양강도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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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갈암 금양강도지는 조선 후기 때 학자였던 갈암 이현일(葛庵 李玄逸, 1627~1704)이 나이가 들어 금양정사를 짓고 후학을 위해 학문을 가르치던 곳이다.
이현일은 이현일은 영해부(지금의 영덕군) 인량리에서 태어났다. 1646년과 1648년 연거푸 석연치 않게 소과에서 좌절하자 과거에 뜻을 접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후 학문으로 명성이 높아져 1677년에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693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갑술환국으로 유배되었으며, 1699년에 풀려난 이후 1700년부터 이곳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현일은 이황(李滉)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한 인물로 당시 영남학파를 대표했던 학자였다. 금양정사에서 이현일의 가르침을 받거나 교유한 인물을 기록한 『금양급문록』에는 657명에 이르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어 이현일의 학문적 위치와 영향력을 알 수 있다.
금양정사 터에는 이현일을 기리는 유허비(遺墟碑)*와 금양단(錦陽壇)이 세워져 있다. 이현일의 제자들이 선생의 뜻을 이어가기 위하여 지은 것으로 전하는 건물이다.
- 유허비(遺墟碑): 선인들의 자취가 남아 있는 곳에 그들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비.
영문
This is the place Yi Hyun-il (1627-1704, pen name: Karam), a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built in the last few years of his life to teach his students.
Yi Hyun-il was born in Yeonghaebu (today’s Yeongdeok region). From 1646 to 1648, he failed to pass the lower state examination. He gave (뜻을 접다?) up the state examination and devoted himself to his scholarly studies. He became famous due to his studies and started his life as a government official in 1677. In 1693, he became minister of personnel. However, he was embroiled in political strife so he was exiled. In 1699, he was released from exile and since 1700 he lived here and he devoted himself to teaching his students.
Yi Hyun-il was the legitimate successor of the teachings/studies of Yi Hwang (1501~1570), a renowne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Thus at that time, Yi Hyun-il was a representative scholar of Gyeongsang-do Province. A record of 657 people who were taught by Yi Hyun-il in Geumyangjeongsa or associated with him was passed down. This document attests Yi Hyun-il’s great erudition and influence.
The current building is presumed to have been built in 1901. In the vicinity of the building a stele honoring Yi Hyun-il was erected.
영문 해설 내용
이곳은 조선시대의 학자 이현일(1627-1704, 호: 갈암)이 만년에 금양정사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이현일은 영해부(지금의 영덕 지역)에서 태어났다. 1646년과 1648년 연거푸 소과에서 불합격한 뒤 과거에 뜻을 접고 학문에 전념하였다. 이후 학문으로 명성이 높아져 1677년에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693년 이조판서가 되었다. 그러나 정쟁에 휘말려 이듬해 유배되었으며, 1699년에 풀려난 이후로는 1700년부터 이곳에 머물며 후진 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현일은 조선의 저명한 학자인 이황(1501~1570)의 학문을 정통으로 계승한 인물로, 당시 경상도 지역을 대표했던 학자였다. 금양정사에서 이현일의 가르침을 받거나 그와 교유한 인물들을 기록한 문헌이 전해지는데, 여기에는 657명에 이르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어 이현일의 학문적 위치와 영향력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01년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인근에는 이현일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
- 『갈암집』 부록1 , 「연보」 http://db.itkc.or.kr/dir/item?itemId=MO#/dir/node?dataId=ITKC_MO_0391A_0360_010_0010
- 이현일, 갈암 금양 강도지, 유교넷(국학진흥원) http://www.ugyo.net/tu/psn/man.jsp?sMan_Code=10154#
- 이현일, 갈암 금양 강도지, 유교넷(국학진흥원) 2 http://www.ugyo.net/tu/rin/ruins.jsp?sSiteCode=anih001
->현재 건물 대청 상부 상량문에 ‘상지삼십팔연신축삼월이십사일경인진시입주오시(上之三十八年辛丑三月二十四日庚寅辰時立柱午時)’라고 쓰여 있다.
- 갈암금양강도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ulPageNo=1®ion=2&searchCondition=%ea%b0%88%ec%95%94&searchCondition2=&s_kdcd=00&s_ctcd=00&ccbaKdcd=23&ccbaAsno=01160000&ccbaCtcd=37&ccbaCpno=2333701160000&ccbaCndt=&stCcbaAsno=&endCcbaAsno=&stCcbaAsdt=&endCcbaAsdt=&ccbaPcd1=99&chGubun=&header=view&returnUrl=%2fheri%2fcul%2fculSelectViewList.do&pageNo=5_1_1_0
- 갈암 금양 강도지, 국립문화재연구소 문화유산 연구지식포털 https://portal.nrich.go.kr/kor/overviewUsrView.do?menuIdx=572&mcidx=24344
- 갈암 금양강도지,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Contents/Index?local=andong
- 갈암금양강도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A%B0%88%EC%95%94&ridx=1&tot=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