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김씨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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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김씨 종택
안동김씨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안동김씨 종택
한자 安東金氏 宗宅
주소 경북 안동시 풍산읍 장태골길 28 (소산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25호
지정(등록)일 1981년 4월 25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안동김씨 종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김씨 종택은 조선 전기 때 문신이었던 양소당 김영수(養素堂 金永銖, 1446~1502)의 종갓집이다. 이 집이 위치한 소산리는 김영수의 할아버지인 김삼근(金三近, 1390~1465)이 15세기경에 입향한 이래 안동 김씨 집성촌이 되었다.

김영수는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였고, 음서*로 벼슬에 나가 의금부 도사, 사헌부 장령,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김영수의 아들은 평양부 서윤을 지낸 김번(金璠, 1479~1544)이고, 증손은 병자호란 때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던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 1570~1652)으로, 이후 김영수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최대의 문벌로 성장하였다.

안동 김씨 종택은 ‘ㅁ’자형의 기와집으로 남서향이다. 대문은 없으며 사랑채와 중문간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오른쪽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왼쪽의 안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왼쪽에 방을 두었고, 오른쪽은 대청으로 개방하였다. 사랑채와 대청 사이에는 들문을 달아 필요할 때 공간을 넓힐 수 있게 하였다.


  • 음서(蔭敍):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전기의 문신 양소당 김영수(養素堂 金永銖, 1446~1502)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은 한 가문의 맏이가 대대로 살아온 집을 말한다. 이 집이 위치한 소산리는 김영수의 할아버지인 김삼근(金三近, 1390~1465)이 15세기 경에 입향한 이래 안동김씨 집성촌이 되었다.

김영수는 어려서부터 무예가 출중하였고, 음서*로 벼슬에 나가 의금부 도사, 사헌부 장령, 영천군수 등을 지냈다. 김영수의 아들은 평양부 서윤을 지낸 김번(金璠, 1479~1544)이고, 증손은 병자호란 때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을 주장하였던 예조판서 김상헌(金尙憲, 1570~1652)으로, 이후 김영수의 후손들은 조선 후기 최대의 문벌로 성장하였다.

안동김씨종택은 ㅁ자형의 기와집으로 남서향이다. 대문은 없으며 사랑채와 중문간채, 안채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 우측 뒤편에는 사당이 있다. 안채는 대청을 중심으로 양옆에 각각 안방과 건넌방이 있고, 왼쪽의 안방 앞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사랑채는 왼쪽에 방을 두었고, 오른쪽은 대청으로 개방하였다. 사랑채와 대청 사이에는 들문을 달아 필요할 때 공간을 확장할 수 있게 하였다.


  • 음서(蔭敍):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을 세웠거나 높은 벼슬을 한 양반의 자손을 과거시험 없이 관리로 채용하는 제도.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