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한천정사
안동 한천정사 |
|
대표명칭 | 안동 한천정사 |
---|---|
한자 | 安東 寒泉精舍 |
주소 | 경북 안동시 예안면 태곡리 320-1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78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11월 14일 |
분류 | 유적건조물/인물사건/인물기념/생활유적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안동 한천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
해설문
국문
한천정사는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의 학식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과 제자 및 지역 유림이 1786년에 세웠다.
김택룡은 조목(趙穆)과 이황(李滉)의 제자로, 158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농사짓는 것을 장려해 백성들을 정착시키는 데 힘썼고, 마을을 교화하고 후진을 양성하는 일에 힘을 기울였다.
본래 한천정사는 김택룡의 위패를 모신 한천사(寒泉祠)라는 사당에 있었는데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손되었다. 191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짓고,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교육 공간인 정사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다. ‘한천정사’라는 이름은 송나라 때 주희(朱熹)가 모친상을 당한 후 묘소 근처에 한천정사를 짓고 머물렀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한천정사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택룡(金澤龍, 1547~1627)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과 제자, 지역 유림이 1786년에 건립하였다.
김택룡은 조목(趙穆, 1524~1606)과 이황(李滉, 1502~1570)의 제자로, 1588년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농경을 장려해 백성을 정착시키는 데 힘썼고, 향촌 교화와 후진 양성 등에 주력하였다.
원래 이 건물은 김택룡의 위패를 모신 한천사(寒泉祠)라는 사당에 있었다. 그러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이 훼손된 후, 1910년 이 건물을 현재의 위치로 옮기고 위패를 모시는 사당과 교육공간인 정사 두 가지 용도로 사용하였다. 한천정사의 이름은 주희(朱熹)가 모친상을 당한 후 묘소 근처에 한천정사를 지어 머물렀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다.
참고자료
- 조지형, 「조성당 김택룡의 예안 생활과 시조 창작」, 『국학연구』 35, 한국국학진흥원, 2018.
- 윤성훈, 「『조성당일기』를 통해 본 17세기 초 영남 사족의 일상 속의 문화생활」, 『한문학논집』 35, 근역한문학회, 2012.
- 김택룡 저, 하영휘 역, 『조성당일기』, 한국국학진흥원, 2010.
→ 위의 자료들을 통해 김택룡의 생애 연보를 확인할 수 있다.
- 안동 한천정사, 경북도 문화재자료 지정 예고, NEWSIS. https://newsis.com/view/?id=NISX20190919_0000773653&cID=10899&pID=1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