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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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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정사
천운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천운정사
한자 天雲精舍
주소 경북 상주시 외답2길 46 (외답동)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76호
지정(등록)일 1987년 12월 29일
분류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천운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천운정사는 조선 영조 때 활약한 성리학자 이만부(1664∼1732)가 숙종 23년(1697)에 상주로 이사와 독서와 교육, 지역 선비들의 모임 장소로 지은 정사이다. 헌종 12년(1846)과 고종 29년(1892)에 낡은 곳을 고쳤고, 고종 30년에 천운당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 유학자들이 모임을 만들기도 했다. 천운정사는 상주에서 평생 학문을 통해 수많은 책과 후학을 길러낸 이만부의 삶과 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또한, 문헌을 통해 당시 정사의 건축과 조경 방법이나 자연과의 조화와 관계를 살필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식산의 북쪽 산비탈 지형을 이용해 천운당, 화단, 조감당을 3개의 단으로 구성하고, 외곽으로 돌담을 쌓아 경계를 지었다. 천운당은 앞면 3칸, 옆면 3칸인데, 부엌과 방 2칸에 방 앞으로 다락처럼 높게 만든 누마루 2칸이 돌출된 ‘ㄱ’자형이다. 부엌 쪽은 지붕이 맞닿은 ‘ㅅ’자 모양이고 누마루 쪽은 옆면에도 처마가 뻗어 화려하다. 기둥 위에 지붕 하중을 받치는 뼈대의 짜임새나 창과 문은 간소하나 당시 제작기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이만부가 지은 『노곡기』에는 현재 남아 있는 천운당과 연못인 조감당 외에도 민지정, 종정교, 세한단, 애련암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천운정사는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이만부(1664∼1732)가 독서와 교육, 지역 선비들과 모임을 위한 장소로 쓰기 위해 지은 건물이다.

이만부는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으며, 1697년 상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면서 많은 저술을 남겼다.

그는 이곳에 정착한 해에 ‘식산정사’를 지어 살 집을 마련했다. 여기서 서재로 쓰인 건물이 지금의 천운정사로, 1846년과 1892년에 보수되었다.

북쪽을 향하고 있는 정사 건물은 부엌, 온돌방, 마루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방과 온돌방은 지붕을 서로 다르게 처리하고, 공간별로 다른 이름을 붙였다.

건물 아래에는 화단과 사각형의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 주자의 시구에서 인용하여 ‘천운재’라 하였고, 마루방은 ‘천운당’, 온돌방은 ‘양호료’라 이름하였다. 부엌과 온돌방 쪽은 팔작지붕을, 마루방 쪽은 맞배지붕을 올렸다.
  • 이만부가 지은 식산정사(息山精舍) 중 유일하게 보존된 건물로, 서재로 쓰였다.
  • 지금은 대지의 경사를 따라 건물, 화단, 연못이 3단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이만부가 지은 <노곡기>에는 다른 명칭들도 기록되어 있어 이곳의 전체 구성을 유추해볼 수 있다.

참고 자료

  •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443700760000&pageNo=1_1_1_1 -> 기본 정보 확인
  • 겨울섬, 개인블로그 https://gotn.tistory.com/639 -> 이만부(李萬敷)는 1697년에 34세로 서울에서 상주로 이거하여 천운정을 짓고는 독서와 교육, 선비의 집회 장소로 사용하였으며, 학문과 교육 문학과 서도에 일가를 이룬 공간인 식산정사(息山精舍) 중 유일하게 보존된 천운정(天雲亭)이며, 이 정사의 원래 이름은 천운당(天雲堂)으로 1700년에 세워졌으나 천운당보다는 천운정으로 널리 알려졌고, 1846년과 1892년에 중수하였고, 1893년 5월에는 천운당을 영구히 보존하기 위해서 사림에서 계를 조직 하기도 했습니다.
  • 평생 학문을 벗 삼은 이만부의 혼을 찾아서, 오마이뉴스, 2009.5.2.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123152 -> 그렇게 내려온 이만부 선생은 논실(외답동)에 터를 잡고 '식산정사'라는 당호를 붙이고 집을 지었다. 지금은 이만부 선생의 서재였던 '천운정사'만이 남아 이만식 선생의 자취를 느낄 수 있다. 천운정사는 이만부 선생이 1700년경에 건립한 곳으로 선생이 지은 정사 중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는 건물이다. 1987년 12월 29일 경상북도민속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1990년 7월 상주시에서 보수하였다. 이만부 선생은 주자의 시구 중 "반무방당일감개(半畝方塘一鑑開) 천광운영공배회(天光雲影共徘徊)"에서 인용하여 '천운재(天雲齋)'라 하였다. 특히 이 집은 건축학적으로 가치가 크다.

  • 수산, 다음 블로그 http://blog.daum.net/kil0930/704 -> 노옥기 내용 : 예부터 마을의 집들이 서쪽을 끼고 있는 동편의 조그마한 터에 노동서당이 있고 또 그 동쪽이 내가 자리잡은 터이다. 계곡물 동편에 집을 짓고 서쪽에 창문을 내고 북쪽은 방으로 하였다. 그리고는 그 당(堂)은 천운(天雲)이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