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 청간정
상주 청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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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상주 청간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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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州 澗澗亭 |
주소 | 경상북도 상주시 낙동면 운평리 154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58호 |
지정(등록)일 | 2009년 10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 |
웹사이트 | 상주 청간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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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상주 청간정은 풍양 조씨 검간공종파 자손들과 영남의 유학자들이 모여 국내외 정세를 의논하고 시를 지으며 감상하던 정자이다. 청간이라는 이름은 '자연의 소리인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마음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으로서 자연을 벗하여 자신을 수양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가곡공 조예(1608~1661)가 1650년 무렵 건축한 것으로 추정되며, 1870년 무렵에 5개 파 자손들이 힘을 모아 수리했다. 청간정은 조선 시대 정자의 기능과 건축적 특성, 건축물과 자연의 관계를 살필 수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정자의 이름처럼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산비탈을 이용해 앞면 3칸, 옆면 1.5칸의 정자를 짓고 출입문은 남서쪽으로 냈다. 앞쪽은 다락처럼 높게 툇마루를 설치하여 정자 앞의 흐르는 시냇물을 볼 수 있게 했다. 그 뒤로 온돌방 2칸과 마루 1칸이 일렬로 놓여 있다. 방과 마루 앞의 툇마루 밑은 짧은 둥근 기둥이고, 그 위에 긴 둥근 기둥을 별도로 세워 대들보를 직접 받쳤다. 툇마루 앞의 기둥 밖으로는 계자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지붕의 뼈대는 대들보와 종보에 서까래를 받치는 나무인 도리가 5줄로 걸리는 오량가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 계자 난간: 툇마루에서 추락을 막기 위해 닭의 발 모양으로 바깥쪽으로 구부정하게 다듬은 짧은 기둥에 화초 무늬나 덩굴무늬를 새겨 만든 난간.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정자는 풍양 조씨 문중 후손들의 교육과 영남 지역 유림들의 모임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조예(1608~1661)가 1650년에 지었다고 하며, 지금의 건물은 후손들이 1870년 경에 중수한 것이다.
마루와 온돌방을 나란히 배치하고 온돌방 옆에 쪽마루를 달았으며, 앞쪽에 계자 난간을 두른 툇마루를 돌출시켰다.
건물로 출입할 수 있는 계단이 있는 양쪽 끝에는 나무판으로 된 문이 달려있다.
‘청간’은 '자연의 소리인 계곡의 물소리를 듣는 것과 동시에 마음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뜻으로, 자연을 벗하여 자신을 수양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정자 옆에 조예가 공자가 제자들을 가르친 뜻을 본받아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남아있다.
참고 자료
- 마음 깊숙한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상주 청간정, aprilmin님의 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prilmin/221537849591 -> 조예의 아들인 조원윤과 조진윤 형제는 미수 허목(眉叟 許穆)의 제자로, 미수(眉叟)에게 청간정의 현판을 받아 들보에 걸었다. ; 정자의 이름을 적은 현판은 조선 후기 이름난 학자이자 서예가인 허목(1595-1682)이 쓴 것이라고 하나, 다른 건물에 남아있는 허목의 글씨와 달라 확인이 필요하다고 함. /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 단에서 제자를 가르친 뜻을 본받아 정자 옆에 두 그루의 큰 은행나무를 심고 이를 자손들을 위한 강학의 터전으로 삼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