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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용산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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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용산정사
상주 용산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용산정사
한자 尙州 龍山精舍
주소 경북 상주시 낙동면 양진당길 17-40, 217호 (승곡리)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38호
지정(등록)일 2003년 4월 14일
분류 유적건조물
수량/면적 1곽
웹사이트 상주 용산정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주 용산정사는 조선 시대 경제력이 있는 양반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주로 휴식을 위한 정자와 같은 목적으로 사용했다. 용산은 갑장산 구룡의 한 줄기가 동으로 뻗어 모인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헌종 9년(1849)에 장천의 홍수로 풍양 조씨의 종갓집인 양진당(보물 제1568호)이 해를 입었다. 당시 종손이었던 조상덕은 선조의 뜻을 잇고 독서와 수양을 위해 그곳의 나무 중 일부로 건물을 짓고 이름을 와룡당이라 했다. 1926년에 후손인 조남호가 지금처럼 고쳐 짓고,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의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와연당으로 바꿔 불렀다. 종갓집에서 조금 떨어진 명당에 연못이 있는 누정으로 조선 후기의 누각과 정자의 건축 형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정사의 대문간 앞에는 장방형으로 파서 만든 못이 있는데, 이곳에 물을 채우고 연꽃 등을 심어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경치를 보고 즐겼다. 대문간과 정사 2동이 남서쪽을 바라보고 있고 주위는 흙돌담을 쌓아 돌렸다. 산비탈 때문에 지대가 낮은 앞면에는 높은 기단과 돌기둥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툇마루를 만들었다. 본당은 3칸 온돌방을 일렬로 배열하고, 왼쪽 끝에는 마룻바닥에 면마다 여러 종류의 창을 단 마루방이 있다. 집의 나무 뼈대의 짜임새는 간소하지만 방의 기능에 따라 다양한 창을 단 점이 돋보인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용산정사는 독서와 수양을 위해 조상덕이 1849년에 세운 건물이다.

1849년 홍수로 인해 종가인 양진당이 피해를 입자, 종손이었던 조상덕은 양진당의 목재 일부를 이용해 이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의 건물은 후손 조남호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대문간과 정사 건물 두 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대문간 앞에는 사각형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정사 건물은 온돌방을 일자로 배열하고 오른쪽 끝에 마루를 두었으며, 마루방에는 세 면의 창을 모두 다르게 달았다. 건물의 사면을 둘러 툇마루를 달았고, 전면과 오른쪽 마루에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다.

  • 경사진 지형에 지어진 건물은 앞쪽에 기단을 높게 세웠고 왼쪽의 계단을 올라서 진입할 수 있다.
  • 조상덕은 건물의 이름을 ‘와룡당’이라고 했고, 조남호는 대청마루에 누워서 집 앞의 연못을 한가로이 감상할 수 있다는 뜻에서 ‘와연당’이라고 했다./ ‘용산’이란 뜻은 갑장산 구룡(九龍)의 한 줄기가 동으로 십 여리를 달려와 결지된 장소라는 뜻이라고 전한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