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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조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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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조공제
상주 조공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상주 조공제
한자 尙州 趙公堤
주소 경북 상주시 복룡동 504-1번지 외 1필지
지정(등록) 종목 경상북도 기념물 제140호
지정(등록)일 2002년 7월 15일
분류 유적건조물/산업생산/농업/관개시설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3,369㎡
웹사이트 상주 조공제,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상주 조공제는 상주 목사 조병노가 농업에 필요한 물 관리를 위해 쌓은 제방이다. 조선 고종 10년(1873)에 세운 조공제비에 ‘동편은 물길이 허하여 가둘 수 없음에 흙을 쌓고 나무를 키우게 하였다.’, ‘일꾼들에게 명하여 돌을 실어다 쌓도록 하니 그 제방이 마침 성과 같았다.’라고 전하여 제방을 쌓은 목적을 알 수 있다. 현재는 돌과 흙으로 쌓은 길이 370m, 높이 2.5m, 폭 5m 정도가 남아 있다.

『상산지』에는 조공제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전해진다. 상주읍 터의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라 지네의 독기가 읍기에 서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네와 상극인 밤나무 숲을 조성하고 율수라고 불렀다. 또 임진왜란 때 명장 정기룡 장군이 상주성 탈환을 위해 적을 공격할 당시에 이곳 동숲을 아군의 매복지로 정하여 왜적에게 대승을 거두고 성을 탈환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렇듯 상주 조공제는 조선 시대 물 관리와 농업 장려를 위한 중요한 유적일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의 흔적이 남아있기도 하며, 풍수지리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가진 역사유적이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조공제는 상주 목사였던 조병노가 1873년에 쌓은 수리시설이다.

돌과 흙을 이용해 제방을 쌓고 그 위에 밤나무를 심었으며, 현재 남아있는 제방은 길이 370m, 높이 2.5m, 폭 5m 정도이다.

제방 남쪽 끝에는 이곳을 조성한 내역을 기록한 조공제비가 세워져 있다.

임진왜란 때 정기룡 장군이 이곳에 군사를 매복시켜서 상주성 탈환을 위한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또 상주읍 서쪽에 있는 산이 지네의 형상이기 때문에 산이 보이는 건너편에 풍수지리학적으로 지네와 상극인 밤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것으로 보아 제방이 세워지기 전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비보림 역할을 했던 큰 밤나무 숲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고 자료


http://blog.daum.net/12977705/87243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