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곡재
도곡재 Dogokjae Hou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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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도곡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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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Dogokjae House |
한자 | 陶谷齋 |
주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하빈면 육신사길 60 (묘리) |
지정(등록) 종목 |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2호 |
지정(등록)일 | 1995년 5월 1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주거건축/가옥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1,792㎡ |
웹사이트 | 도곡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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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도곡재(陶谷齋)는 사육신 중 한 분인 박팽년 선생의 후손들이 세거하고 있는 묘골마을 내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대사성을 지낸 서정공 박문현이 정조 2년(1778)에 주택으로 건립하였다고 전하여 지는데, 19세기 중엽부터 도곡공 박종우(陶谷公 朴宗佑)의 재실로 사용하면서 선생의 호를 따서 도곡재라 부르게 되었다. 후에 도곡재는 살림집으로 바뀌었다.
박종우는 인조 때의 문신으로 낙재 서사원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한강 정구 문하에 출입하였으며,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향하여 통곡하고, 평생 동안 지은 글을 모두 태워 버렸다고 한다. 또한 자칭 숭정처사(崇禎處士)라 하고 종신토록 세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달성 10현 중 한사람이다.
도곡재는 조선시대 남부지방 양반가옥의 실례를 잘 보여주며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이 3개의 권역으로 분리되어 튼ㅁ자형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랑채인 도곡재는 원래 정면 4칸, 측면 1칸 규모였으나 후대에 재실로 사용하면서 왼쪽에 퇴칸 1칸을 달아 내고 대청을 넓혀 누(樓)처럼 꾸몄다.
영문
Dogokjae House
This house was built in 1778 by Bak Mun-hyeon (1798-1875), a civil official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It is located in Myogol Village, which is a clan village of the Suncheon Bak clan.
Bak Mun-hyeon was a descendant of Bak Paeng-nyeon (1417-1456), who remained loyal to King Danjong (r. 1452-1455) when his throne was usurped in 1455 by his uncle, King Sejo (1455-1468). Bak Paeng-nyeon and a group of civil officials conspired against King Sejo to restore King Danjong to the throne, but this conspiracy was revealed, and King Sejo severely tortured and executed them. Following this, the descendants of Bak Paeng-nyeon lived in this village.
The house consists of a gate quarters, men’s quarters, and women’s quarters. During the mid-19th century, the men’s quarters was expanded to be used as a ritual house for preparing ancestral rituals and maintaining the tomb of the civil official Bak Jong-u (1567-1654, pen name: Dogok), an ancestor of Bak Mun-hyeon. This is where the house gets its name.
- '안채와 사랑채의 아궁이 위에 다락을 만든 것이 독특하다.'
- 부엌 위에 다락방을 두는 것이 비교적 흔한일인데... 이 부분을 일단 뺄게요.
- 박종우는 박팽년의 후손인데 박문형의 조상인제 확인 부탁~
- 사진으로 봤을 때 초가집도 있고, 각 채는 담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다시 확인 필요.
영문 해설 내용
이 집은 조선 시대의 문신인 박문현(1798-1875)이 1778년에 지었다. 순천박씨 집성촌인 묘골 마을에 위치한다.
박문현은 박팽년(1417-1456)의 후손이다. 박팽년은 1455년 삼촌에 의해 폐위되고 유배당한 단종에게 충절을 지킨 신하였다. 박팽년과 몇몇 신하들은 새로 왕위에 오른 세조(r. 1455-1568)를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으나 이들의 모의는 발각되었고, 세조는 이들을 모질게 고문한 뒤 처형했다. 이후 박팽년의 후손들은 이곳 묘골 마을에 세거하면서 순천박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이 집은 사랑채, 안채, 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도곡재’는 이 중 사랑채에 해당하며, 조선 시대의 문신이자 박문현의 선조인 박종우(1587-1654)의 호 ‘도곡’에서 이 집의 이름이 비롯되었다. 이 사랑채는 19세기 중반에 박종우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초안
이 집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박문현(1798-1875)이 1778년에 지었다.
19세기 중반에는 조선시대의 문신인 박종우(1587-1654, 호: 도곡)의 묘소를 관리하고 제사를 준비하기 위한 재실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박종우는 박팽년(1417-1456)의 후손으로, ‘달성 10현’으로 꼽힌다.
이 집은 사랑채, 안채, 대문채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도곡재’는 이 중 사랑채에 해당한다.
사랑채는 앞쪽에 마루를 두고 안쪽에 온돌방을 둔 구조이다. 재실로 이용하면서 왼쪽으로 작은 퇴칸을 덧붙여 누마루처럼 꾸며서 대청을 넓혔고, 앞쪽 마루와 퇴칸을 삼각형의 쪽마루로 연결했다.
각 건물의 영역은 담장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의 아궁이 위에 다락을 만든 것이 독특하다.
- 박종우 행적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필요 : 병자호란 때 참전하고자 했으나 90이 넘은 노모가 계서 나서지 못했고, 이후 인조가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서 자신이 쓴 글을 모두 태우고 평생 은거하였다고 한다. / 병자호란에 참여해 전사했다고 한다.
- 박팽년은 1455년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에 반대한 이들과 함께 세조를 살해하고 단종을 복위시키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들의 모의는 발각되었고 모진 고문을 당한 뒤 처형당했다.
- 박문현과 박종우는 모두 박팽년(1417-1456)의 후손이며, 이 집이 위치한 묘동은 순천 박씨 후손들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참고자료
-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개인 블로그 https://younghwan12.tistory.com/3258
- Culture & History Traveling, 개인 블로그 http://www.dapsa.kr/blog/?p=43968
-> 건물별 상세사진. 아궁이 위 다락 언급,
- 이창우의 내청춘 산에 걸고, 개인 블로그 https://yahoe.tistory.com/2340 ->육신사로 향하는 입구 오른편에 있다.
- 옛문화답사회,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rkdc&logNo=220005592819&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 옆마루와 사랑 마루를 삼각형의 쪽마루로 이어 통행의 편리함을 꾀하였으며, 한 여름에는 앞면의 사랑문, 들어열개문을 들어올리면 옆마루와 함께 보다 넓은 마루로 활용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