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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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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5일 (토) 14:4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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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사 비
Stele of Samgangsa Shrine
삼강사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삼강사 비
영문명칭 Stele of Samgangsa Shrine
한자 三江祠 碑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삼량진읍 삼랑리 631-3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삼강사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사림의 우두머리였던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였던 여흥(驪興) 민씨 5형제의 지극한 효성과 두터운 우애, 학문을 기리는 비석이다. 팔작지붕에 화려하게 단청한 비각 안에 있다.

구령(九齡), 구소(九韶), 구연(九淵), 구주(九疇), 구서(九敍) 형제는 중종 때인 1510년 밀양강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난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함께 공부하고 자연을 즐겼다. 삼랑루(三郞樓)가 있던 자리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으나 사양하자 관찰사 임호신이 이들의 정신을 기려 정자에 ‘오우정(五友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1563년 지역 선비들이 사당을 정자 근처에 짓고 오우사(五友祠)라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다 불타버렸다.

오우사는 1702년 삼강서원(三江書院)으로 복원됐고 영조 때인 1775년 삼강사 비가 세워졌다. 서원은 철폐령에 따라 1868년 헐렸고 그 자리에 다시 지금의 오우정이 들어섰다.

영문

Stele of Samgangsa Shrine

영문 해설 내용

여흥민씨 5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1775년에 세운 비이다.

민구령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인 김종직(1431-1492)의 제자였으며,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두터운 우애로 이름난 선비였다. 그는 1510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네 명의 동생 민구조, 민구연, 민구주, 민구서와 함께 공부하며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이들은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음에도 사양하였다.

1563년 지역 선비들이 형제들의 우애와 덕행을 추모하여 정자 근처에 '다섯 친구의 사당'이라는 뜻의 오우사를 지었다. 그러나 정자와 사당 모두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1702년 사당와 정자를 다시 지었고, 지금의 비석을 1775년에 세웠다. 새로 세운 사당은 인근에서 세 줄기의 강물이 만나기 때문에 '세 강의 사당'이라는 뜻의 삼강사라 이름 지어졌다. 사당은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에 다시 헐렸고, 이후 후손들이 사당이 있던 자리에 정자를 짓고 오우정이라 하였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