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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사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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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강사 비
삼강사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삼강사 비
한자 三江祠 碑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삼량진읍 삼랑리 631-3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06호
지정(등록)일 1995년 5월 2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삼강사 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조선 사림의 우두머리였던 김종직(金宗直)의 제자였던 여흥(驪興) 민씨 5형제의 지극한 효성과 두터운 우애, 학문을 기리는 비석이다. 팔작지붕에 화려하게 단청한 비각 안에 있다.

구령(九齡), 구소(九韶), 구연(九淵), 구주(九疇), 구서(九敍) 형제는 중종 때인 1510년 밀양강과 낙동강이 어우러져 풍광이 빼어난 이곳에 정자를 짓고 함께 공부하고 자연을 즐겼다. 삼랑루(三郞樓)가 있던 자리였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으나 사양하자 관찰사 임호신이 이들의 정신을 기려 정자에 ‘오우정(五友亭)’이라는 현판을 걸었다고 한다. 1563년 지역 선비들이 사당을 정자 근처에 짓고 오우사(五友祠)라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이들의 삶을 알려주는 자료가 거의 다 불타버렸다.

오우사는 1702년 삼강서원(三江書院)으로 복원됐고 영조 때인 1775년 삼강사 비가 세워졌다. 서원은 철폐령에 따라 1868년 헐렸고 그 자리에 다시 지금의 오우정이 들어섰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여흥 민씨 5형제의 효성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비각 안에 있다.

민구령(閔九齡)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학자인 김종직(1431-1492)의 제자였으며, 부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과 두터운 우애로 이름난 선비였다. 그는 1510년 이곳에 정자를 짓고 구조(九詔), 구연(九淵), 구주(九疇), 구서(九敍) 등 자신의 형제들과 함께 공부하며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이들은 조정에서 여러 차례 벼슬을 권했음에도 사양하였다.

1563년 지역 사림들이 형제들의 우애와 덕행을 추모하여 정자 근처에 오우사(五友祠)라는 사당을 지어 봄·가을에 제례를 지냈고, 이 때 삼강사비를 함께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이 때 세워진 정자와 사당, 비석 등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 사라졌다.

1702년에 사우와 정자를 중건하여 삼강서원이 되었으며, 지금의 비석은 1775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비문은 민우수(1694-1756)가 지었고 글씨는 권상하(1641-1721)가 썼다.

삼강사 비 뒤편 축대 위에는 복원된 오우정과 삼강서원 등 이들 형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자와 사당 등의 건물이 축대 위에 세워져 있다.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