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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표충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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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충서원
표충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표충서원
한자 表忠書院
주소 경상남도 밀양시 표충로 1338 (단장면, 표충사)
지정(등록) 종목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2호
지정(등록)일 1972년 2월 12일
분류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표충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선 서산(西山), 사명(四溟), 기허(騎虛) 세 대사를 추모하는 사당이다. 원래는 무안면 중산리에 표충사(表忠祠)라는 이름으로 건립돼 1669년 사액(賜額)*을 받았다.

1839년 영정사(靈井寺)가 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때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었다. 표충서원은 조선시대 지방 사립학교였던 일반 서원처럼 건물을 배치하고 제례를 올렸다고 한다.

서원 철폐령에 따라 1868년 대부분의 건물이 헐릴 때 부처를 모시는 집으로 바뀌었다. 1926년 대화재로 세 대사의 영정을 모시던 영당(影堂) 등이 불탔으나 이듬해 중건될 때 서원 건물도 복원되면서 이들의 영정과 위패를 다시 모시게 되었다.

이후 일부 승려가 “절 안에 유교 서원이 있을 수 없고, 특히 불제자의 영정을 부처님과 나란히 두는 건 불경스럽다”고 하여 1971년 서원을 팔상전(八相殿) 자리로, 팔상전은 서원 자리로 옮겼다. 서원의 본디 모습은 없어졌지만 ‘사찰 안에 서원이 있는’ 유교와 불교의 특이한 관계를 보여준다.


  • 사액: 임금이 사당이나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편액을 내림.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임진왜란 때 승병장으로 활약한 세 명의 승려 서산대사 휴정(1520-1604), 사명대사 유정(1544-1610), 기허대화상 영규(?-1592)를 추모하는 곳이다.

원래 무안면 중산리에 사당으로 건립되었고 1669년 사액(賜額)을 받았는데, 1839년 사찰이 있었던 지금의 자리로 옮겨오면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절의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었다.

1871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6년 화재로 소실되었던 절의 전각들을 1927년에 다시 지으면서 표충서원 건물도 함께 복원하였다. 그러나 일부 승려들이 절 안에 서원이 있을 수 없고 불제자인 세 대사의 영정을 부처님과 나란히 두는 것에 대해 강하게 반대하면서 1971년에 표충서원을 절 서쪽에 위치한 팔상전으로 옮기고, 서원 건물을 팔상전으로 대체하였다.

과거에는 서원의 일반적인 배치로 이루하고 제례를 올렸다고 전하나, 현재의 건물 구성 및 배치는 원래의 서원 형태를 찾아볼 수 없다.


  • 서원철폐령 적용 시기 다름 -> 1868년/1871년 (확인 필요.)

참고 자료

    • 표충서원 기록화조사보고서(2018) 있으나 확인 어려움 (복사신청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