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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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8월 17일 (월) 20: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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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Buseoksa Temple
부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부석사
영문명칭 Buseoksa Temple
한자 浮石寺
주소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사길 243 (부석면, 부석사)
지정(등록) 종목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5호
지정(등록)일 1984년 5월 17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1동
웹사이트 부석사,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서산 부석사는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625~702)가 문무왕 17년인 677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 초기에 무학대사(1327~1405)가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근대에 들어서는 고승 만공(1871~1946)이 머무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떨치기도 하였다.

부석사의 경내에는 극락전,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등이 있다.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89년(숙종 15)에 숙종의 왕자(후의 경종)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원래는 용봉사라는 절에 있었다가 1905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산신각에는 산신과 함께 선묘낭자와 용왕을 모셨으며, 산신각에서 산 위로 좀 더 오르면 만공이 수행하던 토굴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면서 기거하던 집에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 선묘는 의상을 연모하게 되어 그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의상은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에 슬퍼하던 선묘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고, 죽어서 용이 되었다. 용이 된 선묘는 귀국하는 의상의 바닷길을 수호하였다고 한다. 선묘의 도움으로 무사히 이곳 서해안에 도착한 의상은 가장 먼저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도비산에 절을 지으려 하였다. 도비산(島飛山)은 마치 섬이 날아가는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하여 불리는 이름으로 우리나라 3대 명당자리에 속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은 백제의 멸망 후 민심이 흉흉하던 지역이라 일부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용이 된 선묘가 커다란 바위를 하늘에 띄워 반대하는 무리들을 물리쳤고, 이에 의상은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선묘가 하늘로 들어 올렸던 부석은 현재 부석사 앞 10㎞ 지점의 바다에 있는 섬이 되어 지금은 검은여라 불린다. 이후 절의 이름은 ‘떠 있는 바위’라는 뜻의 부석사(浮石寺)가 되었다. 영주 부석사에도 이와 유사한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말의 한 충신이 조선 개국 후 나라를 잃은 설움을 품은 채 이곳에 별당을 짓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별당은 사찰로 변했는데 도비산 자락 바위 절벽에 자리한 사찰이 마치 바다 가운데 바위섬처럼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부석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영문

Buseoksa Temple

This temple is said to have been founded in 677 by the monk Uisang (625-702) of the Silla kingdom (57 BCE-935 CE). Little is known of the temple’s history except that it was rebuilt during the Joseon period (1392-1910) by the monk Muhak (1327-1405). The renowned monk Mangong (1871-1946) also lived and worked here for some time.

According to a legend, when Uisang was studying in Tang China, he met a young woman named Seonmyo at the house he was staying in. Seonmyo fell in love with him and tried hard to get his attention, but Uisang remained devoted only to his studies and maintained his celibacy. When it was time for him to return home, the desperate Seonmyo threw herself off a cliff into the sea. After she died, she turned into a dragon and guarded Uisang on his way home. Upon arrival, Uisang, feeling grateful for Seonmyo, decided to found a temple in her honor here on Dobisan Mountain. When a group of villagers protested against the construction of this temple, Seonmyo, who had turned into a dragon, lifted a huge rock in the sky, which scared the people away so Uisang could build the temple. It is said that that rock became an islet in the sea about 10 km away from the temple. The name of the temple originates from this story and means “temple of the floating rock.” In Yeongju, there is another temple called Buseoksa, which has a similar legend about its origin.

Another story, however, says that this temple originally began as a villa built right after the proclamation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by a distinguished official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who wanted to seclude himself in grief over the loss of his kingdom. According to this story, the name Buseoksa was given to the temple because it is located on top of a cliff on the slope of Dobisan Mountain and thus resembles a rock islet floating above the sea.

The temple complex consists of Geungnakjeon Hall, Anyangnu Pavilion, Gwaneumjeon Hall, and Sansingak Shrine. The wooden seated statue of Amitabha Buddha enshrined in Geungnakjeon Hall was made in 1689 to commemorate the birth of King Sukjong’s (r. 1674-1720) son (later, King Gyeongjong). The statue was originally located at Yongbongsa Temple but was moved here in 1905. Sansingak Shrine is dedicated to the mountain spirit, as well as Lady Seonmyo and the dragon king. On the mountain slope behind Sansingak Shrine is the cave where monk Mangong used to meditate.

영문 해설 내용

부석사는 신라의 고승인 의상(625-702)이 677년에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의 연혁은 자세히 전하지 않으며, 조선시대에 무학대사(1327-1405)가 다시 지었다고 전한다. 고승 만공(1871-1946)이 주석하면서 선풍을 크게 떨치기도 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이 당나라에서 유학하던 때 의상이 기거하던 집에는 선묘라는 낭자가 있었다. 선묘는 의상을 연모하게 되어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지만, 의상은 수행에만 전념하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이 소식에 슬퍼하던 선묘는 결국 바다에 몸을 던졌고, 죽은 뒤 용이 되어, 의상이 귀국하는 바닷길을 수호하였다. 선묘의 도움으로 무사히 서해안에 도착한 의상은 가장 먼저 선묘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이곳 도비산에 절을 지으려 하였다. 일부 백성들의 반대에 부딪혔으나 용이 된 선묘가 커다란 바위를 하늘에 띄워 반대하는 무리들을 물리쳤고, 이에 의상은 절을 지을 수 있었다고 한다. 선묘가 하늘로 들어 올렸던 바위는 현재 부석사 앞 10㎞ 지점의 바다에 있는 섬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절의 이름은 ‘떠 있는 바위의 사찰’이라는 뜻의 부석사가 되었다. 영주 부석사에도 이와 유사한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고려 말의 한 충신이 조선 개국 후 나라를 잃은 설움을 품은 채 이곳에 별당을 짓고 책을 읽으며 지냈다고 한다. 그가 죽은 뒤 별당은 사찰로 변했는데, 도비산 자락 바위 절벽에 자리한 사찰이 마치 바다 가운데 바위섬처럼 떠 있는 것 같다 하여 ‘부석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한다.

경내에는 극락전, 안양루, 관음전, 산신각 등이 있다.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689년 숙종(재위 1674-1720)의 왕자(후의 경종)가 탄생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것이다. 원래는 용봉사라는 절에 있었다가 1905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산신각에는 산신과 함께 선묘낭자와 용왕을 모셨으며, 산신각에서 산 위로 좀더 오르면 만공이 수행하던 토굴이 있다.

갤러리

참고자료